北 열병식 비난한 美, 11월 자국 행사 준비
300억원 넘게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
김정일ㆍ김정은, 세습 초 정권 안착에 동원
中은 군 포함 권력 장악 축하 의식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지난해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처음 공개했다고 이튿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군 열병식 개최 여부와 규모에 전세계 이목이 집중됐던 2월 초. 자국 건군 70주년 기념용이라는 북한의 해명과 항의에도 미국은 이를 도발로 간주했다. 무력 과시를 통한 위협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 역시 화려한 열병식 준비에 착수한 상태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인 미국의 ‘맞불’이 북한에게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자가당착 행태로 보였을 수 있다. 대체 이런 ‘힘 자랑’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일종의 군사 퍼레이드인 열병식은 군 지휘관이 정렬한 군대의 앞을 지나며 검열하는 의식을 뜻한다. 미국 국방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른 열병식 개최 날짜를 11월 11일로 계획하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밝혔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과 병행되리라는 게 미측 설명이다. 지난해 7월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이 큰 감명을 받았다며 자국 독립기념일에도 이런 행사를 해야겠다고 언급했을 때 미국의 열병식은 예고된 일이었다.

최첨단 군사 장비들이 동원되고 병력 5,000~1만명이 수개월 동안 훈련에 투입되는 열병식은 ‘돈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길어야 5시간 정도 하는 ‘실전’을 위해 드는 비용이 수백억원이다. 지난달 24일 백악관은 이번 열병식에 최대 3,000만달러(약 324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이 1991년 워싱턴DC에서 걸프전 승전을 기념을 위해 연 열병식 비용은 1,200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230억원)였다. 일사불란한 미군 8,000여명과 잘 정렬된 탱크ㆍ헬기 등 무기들이 소개됐다.

외빈 자리 배치는 국제정치 동태 반영
박근혜정부는 시가행진으로 ‘안보 정부’ 부각
대내용 불구 신무기 과시 ‘힘 자랑’도
군사 패권국 美 향한 중ㆍ러의 도전
북한 김일성 광장을 뒤덮은 열병식 참가 인파. 연합뉴스
시대 따라 달라진 북한의 ‘열병식 정치’

기본적으로 열병식은 대내용이다. 자국 무력이 든든하고 자랑스런 국민은 정권도 신뢰하게 된다. 북한이 지난달 8일 건군절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은 당이 창건된 1945년 10월 이후 33번째다. 김일성 주석이 13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3회, 김정은 위원장이 7회 열었다. 1948년 시작된 김일성 시대의 열병식은 주로 8ㆍ15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김정일 정권이 수립된 1991년부터 열병식은 체제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열병식 날짜를 당ㆍ군 창건일 중심으로 바꾸고, 행진의 주축이던 김일성 대학 출신 엘리트들 대신 항일혁명 투사와 6ㆍ25전쟁 참전 노병들을 앞세웠다. 영화 연출을 좋아한 김정일 위원장은 열병식도 극적으로 연출했다.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에게 영광이 있으라”라는 연설을 한 것도 김정일 정권 때부터다. 그렇게 2대째 세습이 무난히 이뤄졌다.

불과 30대 나이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에 주로 열병식을 열며 선대 예우를 강조하고 충성 맹세를 강조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탄탄하게 하는 데 열병식을 이용했다는 평가다.

중국 열병식은 권력 장악 과시용

2015년 천안문에서 열린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은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천안문 열병식 개최는 중국 지도자가 군을 포함한 중국 내 모든 권력을 장악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축하 세레모니다. 마오쩌둥도 집권 시절인 1949년부터 10년 동안 천안문 열병식을 열었고, 덩샤오핑도 집권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단됐던 열병식을 부활시킨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전 지도자들의 경우 집권 이후 6~8년 걸렸던 열병식 개최를 집권 3년도 안 된 시점에서 가졌는데, 이로 미뤄 군부 장악을 조기에 완료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육해공군 병사들이 23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첫 리허설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시 주석 천안문 열병식의 자리 배치는 중국의 ‘외교 지형도’ 그 자체였다. 당시 동맹 수준으로 가까워진 러시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리는 시 주석의 바로 옆에 마련됐다. 중국 외교에 공들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우측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사이가 멀어졌던 북한의 사절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오른쪽 끝으로 밀려났다. 당시의 복잡한 국제관계 덕에 중국과의 친밀도를 증명하는 열병식에서 북한 대신 우리가 중ㆍ러 정상과 나란히 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무기로 국민 안전 지키겠다’… 유권자 겨냥

한국 군도 2013년 건군 65주년을 맞이해 국군의 날 시가 행진을 벌였다. 전차ㆍ장갑차ㆍ미사일 등 무기들과 4,500명의 병력이 서울역부터 동묘 앞까지 행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강력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킬체인’(선제공격형 미사일방어체계)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핵ㆍ대량살상무기 대응 능력을 조기에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ㆍ대미 메시지를 발신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안보 이슈를 부각한 것이다. 대국민 접촉도가 높은 시가 행진을 통해 안보를 강조하는 정부에 대한 지지 확보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푸틴 대통령도 최근 신무기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며 자국 내 결속을 유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무게 100톤, 최대 사거리 1만8,000㎞에 이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를 소개하며 “첨단 미사일방어(MD) 회피 시스템을 장착해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이달 18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을 겨냥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핵무기 경쟁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드러낸 메시지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국정연설에서 신형 핵미사일 등 각종 전략 무기를 소개했다. 사진은 신형 사르마트(Sarmat) 미사일. 포토아이 제공
열병식은 상대국 향한 新무기 전시장

실제 열병식은 열강들의 가상 전쟁터다. 2015년 천안문 열병식 당시 “현역 배치 중인 국산 신형 무기들이 공개될 것”이라는 취루이 중국 인민해방군 작전부 부부장의 공언대로 열병식에 참가한 27개 장비 부대는 미사일ㆍ탱크ㆍ대포 등 40여종, 500여개 장비를 선보였고, 100% 중국산에 84%가 신형 무기였다.

특히 관심을 모은 신무기는 ‘둥펑 미사일 시리즈’였다. 둥펑-21D는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사거리 900~1,500㎞ 미사일이고 사거리 3,000~4,000㎞인 둥펑-26은 ‘괌 킬러’로 알려진 미사일이다. 둥펑-31A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고 사거리 1만㎞로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중국의 신형 ICBM이었다. 때문에 군사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을 염두에 둔 무기 공개라는 평이 있었다.

북한도 지난달 열병식에서 ICBM 화성-15형을 선보였다. 최대 사거리 약 1만3,000㎞로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미사일이다. 지난해 열병식에선 북극성으로 명명된 사거리 500㎞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선보이는가 하면,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신형 지대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도 처음 공개했다. 이 역시 한미를 향한 ‘핵 전력 과시’ 성격이 짙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