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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의 난해성과 절규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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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의 난해성과 절규는 어디서 왔나

입력
2018.03.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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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새로 엮어 낸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이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김수영 전집' 새로 엮어 낸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이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나의 시(詩)는 이 때로부터 변하여졌다. 나의 뒤만 따라오는 시가 이제는 나의 앞을 서서 가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모두가 무서운 일이요. 꿈결같이 허무하고도 설운 일뿐이었다. 이것이 온전히 연소되어 재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먼 세월이 필요한 것같이 느껴진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영원히 젊은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잡지 ‘해군’에 1953년 기고한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의 마지막 단락이다.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김수영이 ‘빨치산’으로 찍혀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낸 끔찍한 2년 5개월을 회고한 글이다. 김수영 타계 50년에 맞춰 최근 발간된 ‘김수영 전집’(민음사)의 세 번째 개정판에 새로 실렸다. 병약한 개인의 참혹한 전쟁 체험이 ”나의 앞을 서서 가”는 저항 시의 발화점이었다는, 김수영의 삶의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지는 대목이다.

책엔 김수영이 1950년대에 쓴 산문과 일기들이 여러 편 추가됐다. 2000년대 이후 발굴된 것들이다.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비참한 나락에 내려가 보겠다는 젊은 시인의 다짐, 비참함과 위대함의 양극을 조화시키는 과정에서의 긴장감, 심신이 피폐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제련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후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난해성과 절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김수영의 시와 일기, 산문을 동시에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전집을 엮은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의 설명이다.

‘김수영 전집’의 1981년 초판과 2003년 개정판은 김수영의 동생인 김수명 전 현대문학 편집장이 엮었다. 초판과 개정판을 합해 시편은 5만권, 산문편은 3만권 팔린 스테디셀러다. 김수영 연구 권위자인 이 학장이 오류를 바로잡고 미발표 시∙산문과 미완성 초고 시를 추가하고 해설을 보태 ‘결정판’ 격으로 낸 게 이번 전집이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김수영. 민음사 제공
시인들의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김수영. 민음사 제공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시인이 우겨 대니(…)” 제목부터 불온한 시 ‘“김일성만세(金日成萬歲)”’가 실린 사연. 약 10년 전 원고를 찾아내 시를 발굴한 것은 문학평론가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다. 원고의 제목이 지워져 있어 이전 전집에는 실리지 못했다. 이 학장이 원고를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해 10배로 확대해 본 끝에 ‘김일성만세’라고 적혀 있던 흔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새 전집엔 김수영이 남편이 시각장애인인 유부녀와 연애하는 이야기를 비롯해 ‘부도덕한’ 내용의 산문들이 추가됐다. 이 학장은 “유족들이 일부러 위악적으로 쓴 완전한 창작이라고 주장한 데다 김수영이 소설을 쓰고 싶어 한 점을 감안해 ‘콩트’로 분류했다”고 했다. 김수영의 시가 성차별적 언어를 노골적으로 쓴 구태의 시라는 논란은 여전하다. 이 학장은 “김수영을 영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김수영의 정직성의 표현이고 비참을 겪은 정신적 상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수영 전집 1∙2

이영준 엮음

민음사 펴냄∙1권 428쪽∙1만8,000원, 2권 788쪽∙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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