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많은 별들 중 나를 지켜주는 단 하나의 별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저 낭만적인 누군가가 지어낸 게 아니었나 보다. 갓 태어나 어미젖을 있는 힘껏 빨기 시작한 강아지에게도 정말 강아지의 별 하나가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빛살과, 빛살의 근원인 빛 덩이까지 끌어오는 강렬한 힘은 크고 강한 존재가 지닌 물리적 힘이 아니다. 심박과 호흡의 들썩임 하나하나가 작은 몸피에 다 비치는 여린 존재가 지닌 생명의 힘이다. 강아지에게, 고양이에게, 병아리에게, 그리고 어린이에게……. 어리고 여릴수록 그 힘은 다른 존재가 감히 훼손할 수 없을 만큼 온전하고 완벽해 보인다.

이 시를 성명진 시인의 첫 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창비, 2011)에 실린 ‘불빛’이란 또 한 편의 역작과 나란히 두어 본다.

“오늘 밤엔/ 용이 아저씨네 집에 켜진 불빛이/ 세상의 한가운데 같아요.// 용이 아저씨가/불빛 속을 들여다보고 있고,/ 멀찍이서 나무들이/ 불빛을 둘러싸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집 밖 언덕배기와 먼 산줄기도/ 불빛을 둘러싸고 있네요.// 환한 그 속에선 지금/ 갓 태어난 새끼를/ 어미 소가 핥아 주고 있어요.”

용이 아저씨, 집 근처 나무들, 멀리 언덕배기와 산줄기… 온 세상이 오늘 밤 용이 아저씨 집을 둘러싸고 있던 이유는 새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처럼, 오늘밤 탄생한 외양간의 송아지는 세상 한 가운데 밝혀진 불빛이다. 불빛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 동심원을 이루어 모여 든다. 불빛의 탄생에 온 세상이 숨죽여 경외한다.

‘불빛’은 우주가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고 경외하는 풍경을, ‘강아지 별’은 갓 탄생한 생명이 우주와 연결되는 순간을 그린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고 하듯 한 생명은 불빛이고, 빛이고, 별이다.

그토록 존엄하고 경이로운 생명일진대 타인을 귀하게 존중할 줄 모르고,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만들어 온 암흑의 역사가 줄곧 증언되고 있다. 위계 관계에서 이러한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내가 굳이 존중할 필요 없는 내 ‘아랫사람’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광휘를 지닌 자들에게는 머리 숙이면서도 모든 생명이 지닌 빛은 보지 못하고 타인의 몸을,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 최소한의 법도 무시한다.

강아지에게도 강아지 별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모든 여성에게도 그 별은 있다. 성폭력 가해자에게도 그들만의 별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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