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으로 향하기 전, 음식을 잔뜩 실은 카트의 뒷 모습.

오전 9시만 되면 동물원 조리실이 무척 분주해진다. 먼저 급식차가 도착한다. 급식 조달을 직접 하는 동물원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원에서는 따로 민간 급식업체와 공급계약을 맺는다. 이 업체들은 대개 학교, 식당 등의 납품을 겸하고 있다. 동물들이 먹는 건 사람들보다 훨씬 단조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는 걸 구입하는 도중에 곁가지로 함께 시장을 봐오는 것이다. 그래도 야채, 과일, 생선, 고구마, 과일 통조림, 메추리알, 닭고기, 소고기, 미꾸라지 등 20종이 넘는 종류의 식재료를 매일 사와야 한다.

사람의 음식보다 단조롭다지만 동물원과 계약을 맺은 민간 급식업체에선 매일 스무 가지가 넘는 식재료의 장을 봐와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과의 차이라면 조리과정에서 익히거나 간을 맞추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 대개 조리하지 않은 채 잘게만 썰어 그 형태 그대로 옮겨 먹이게 된다.

동물들은 된장이나 고추장 달라고도 안 한다. 그래도 조리실에는 아침부터 사육사들의 칼질이 난무한다. 냉동된 것은 덩어리째 붙은 걸 하나하나 뜯어내 해동해야 하고, 동물들의 입 크기에 맞추어서 잘게 썰어 주어야 하고, 과일 뷔페를 즐기는 과일 박쥐같은 경우는 다섯 가지 야채와 과일을 잘게 다져 샐러드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큰 동물들보다 작은 동물들의, 골라 먹는 포유류보다는 준대로 그냥 삼켜버리는 파충류들의 먹이에 손질이 많이 가는 편이다.

조리실에선 이 과정 중에 사소하지만 중요한 '꿀팁'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가기 때문에 수의사인 나도 사료 검사한다는 핑계로 동참하여 사육사들의 자잘한 이야기에 몰래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조리실은 정보 입수의 장이다.

아침마다 조리실에서는 각종 식재료를 써는 소리, 분주한 움직임, '꿀팁 정보'로 가득한 향연이 벌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1시간가량의 먹이 준비가 끝나면 사육사들은 각자의 동물 사육장으로 먹이를 운반한다. 먹이 캐리어도 변천사가 있다. 처음엔 공사장 리어카 같은 걸로 옮겼다가 다음엔 공항에서처럼 두 바퀴 손수레 카(카트)가 나와 그걸로 옮겼다가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전기 카트 붐이 불기 시작했다. 전기 카트도 매년 한두 대씩 알뜰하게 구입한 게 이제는 벌써 아홉 대나 되었다. 사육사 한 사람당 한 대 꼴이다.

점점 몸이 편해지니 움직일 생각을 더욱 안 하는 게 아마도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인가 보다. 예전엔 급하면 냅다 뛰어다녔는데 요새는 나부터 카트를 찾고 없으면 당황한다. 카트는 무거운 짐도 실을 수 있고 기동성도 높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을 게으르게 만든다.

사육사의 사료 카트가 먼발치에서 나타나면 해당 사육장의 전체 동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먹이가 곧 나올 문 앞으로 달려가 대기하고 있거나 마치 미어캣처럼 뒷발로 곧추서서 어디만큼 오나 내다보는 곰이나 표범도 있고, 심하게 문을 두드리고 소리 지르며 시위하는 코끼리나 하마도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 누구나 한 번쯤 동물들의 절대 스타, 사육사가 되고 싶어진다.

"밥을 내 놓으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영국 근위대 교대식같이 정형화된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육식동물들에게 가는 카트에는 고기가 한가득 실려 있고, 기린이나 코끼리로 가는 카트 뒤엔 배추와 상추, 당근이 한가득 실려 있다. 미꾸라지가 든 물통을 한가득 실은 물새장의 카트는 물이 쏟아질세라 천천히 움직인다. 육·초식 동물을 동시에 다루는 사육사의 카트는 고기와 야채가 조화되어 마치 커다란 생고기 비빔밥 같다.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기도 하고, 위험한 맹수들의 경우 내실 바닥에 던져 준다.

사육사들은 안으로 직접 들어가 동물들 눈앞에서 먹이를 주기도 하고, 위험한 맹수들에게는 고기를 바닥으로 내던져 내실로 들어오게 한 후 문을 닫고 그 틈에 운동장 청소를 한다. 아픈 동물들에게는 직접 입을 벌려 넣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처방식이 필요한 애들은 미리 수의사에게 받아 놓은 약을 먹이 속에 잘 감추어야 한다. 보통 닭고기의 근육 속에, 고등어의 입속 깊숙한 곳에 숨겨서 준다. 알면 동물들이 다 골라내 버리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사육사가 먹이를 주자마자 열심히 자기 몫을 먼저 챙긴다. 평소 사이좋은 곰이나 원숭이도 이 시간만큼은 신경전을 벌인다. 손으로 자기 앞에 최대한 많은 먹이를 끌어다 놓은 후 서로 등을 돌리고 먹는다. 약한 동물들은 정글에서나 여기서나 어쩔 수 없이 소식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은 어디서나 잘 깨지지 않는 공식이다.

생닭을 잔뜩 챙긴 욕심쟁이 하이에나.

동물들의 먹이 제공은 대부분 아침 한차례로 끝난다. 코끼리나 기린 같은 큰 초식동물들에겐 공복이 심한 오후 무렵 한 차례 더 건초와 약간의 사료를 공급해 준다. 사파리의 곰들은 관람객들에게 하루 종일 받아먹는 양까지 고려하여 먹이를 줄여 준다고 한다. 육식동물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무육일’이란 게 있어 그날은 하루 종일 강제 단식을 시킨다. 야생에선 빈번히 있는 일이다.

동물원의 식사는 대개 아침 한 차례로 끝나지만, 코끼리나 기린 같은 덩치 큰 초식동물들에게는 오후에 한 차례 더 건초나 약간의 사료를 준다.

비단구렁이나 악어 같은 큰 파충류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살아있거나 죽은 먹이를 넣어준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없이 먹는 짧은 틈에 사육사들은 들어가 얼른 청소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굶주림 때문에 눈이 벌게진 냉혈한들에게 사육사들도 한갓 먹이로 쉬이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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