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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다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내부고발자의 편에 선 사람들

입력
2018.02.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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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폭로가 끝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삶을 담보로 용기를 내는 사이, 조용히 그들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부고발자들의 외로운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한국일보가 들어봤습니다.

기획/제작 : 박지윤 기자

“아무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 발씩 스스로 나아가야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내부의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8년이 걸렸다. ‘부당함 앞에 맞설 다른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2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서지현 검사의 글은 그렇게 폭로의 서막을 열었다.

“이건 단순히 ‘성추행’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썩을 대로 썩은 검찰 조직 전체를 겨냥한 내부 고발이죠. 나서서 덮은 사람이나, 보고도 모른 척한 사람이나 ‘더러운 손을 뻗은 그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요.” 지난 몇 년 간 내부제보자들의 법률 지원을 해온 이선경(42) 변호사는 말한다. “균열은 시작됐습니다.”

폭로는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윗선의 외압에 대해 입을 열었고, 예술인들은 거장이라 떠받들어 온 이들의 상습적인 성범죄와 이를 묵인해 온 오랜 관행을 고발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을 담보로 용기를 내는 사이 조용히 그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부고발자를 돕는 사람들'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지문 본부장은 1992년 군 부재자 부정투표를 고발한 이후 수 십 년간 내부 제보자들을 돕고 있다. ”군에 있는 동안만 여당 후보 찍어주면 되는데,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냐, 상급자도 동료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구나.”

장병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중위의 나이는 고작 스물넷. 스스로를 대단한 정의의 사도로 여겼던 건 아니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불편함이 내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그의 증언으로 법이 바뀌고 모든 군인들이 영외로 나와 비밀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조직의 병폐가 폭로 없이 자정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온 세상에 신상이 드러날 각오를 하고 ‘폭로’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언론을 통한 폭로가 가져오는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가져온다. 

"1992년이 아니라 지금이었다면 감히 기자회견장에 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서지현 검사만 해도 엄청난 2차 피해에 직면해 있지 않습니까”

사적인 부분들까지 모두 발가벗겨지고 정작 폭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뒷전. 하지만 언론에 ‘미투’하지 않으면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나 도리가 없는 현실. "어떻게 보면 참담한 일이에요. 이런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조직에 대한 불신과 억울함이 쌓였다는 방증이니까요.”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사건을 맡아 온 이 변호사는 그들의 용기를 응원하지만 ‘너도 폭로해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신분을 안전하게 보장받으면서 변호인을 통해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폭로 이후의 삶은 지옥이다. 내부제보자들을 돕는 단체 호루라기 재단 운영자 이영기 이사장은 내부고발자들이 조직으로부터 당하는 온갖 종류의 보복을 함께 지켜봐 왔다.

“자그마치 12년. LG전자의 내부 비리를 폭로했던 정국정 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치르는데 12년이 걸렸습니다. 삶은 피폐화됐죠.” 폭로의 증거자료로 문건을 공개했다면 ‘절도’ 혐의를, 회사에 찾아와 항의를 했다면 ‘주거침입’ 혐의를, 폭로 사실이 언론에 공표됐다면 ‘명예훼손’ 혐의를 내건다. 

이 이사장은 말한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률 상담을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듯이 내부제보자들의 경우도 권익위든 감사원이든 관계기관이 나서 줘야 해요.” 

외부의 고발자엔 용감하다며 박수를 치다가도, 내부의 고발자엔 ‘배신자’ 낙인을 찍는 이중적인 시선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고은 시인을 두고는 사생활과 업적은 분리해서 인정해야 한다고 두둔하거나 유일한 노벨 문학상 후보를 잃게 됐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단호히 말한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용기는 박수를 받을 일이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그리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당부하는 것이 있다. ‘폭로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분들이 준비과정이 없이 폭로를 했다가 조직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후에 도움을 청하세요.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회사나 기관 입장에서도 외부의 공신력 있는 재단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함부로 처리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 건강한 고발 문화가 안착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식상한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누군가의 폭로에 기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 명이 나서면 그 한 명을 내쫓으면 되지만, 전부가 나설 때 전부를 내쫓을 수는 없어요. 다 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검찰의 ‘이단아’로 불렸던 또 한 명의 내부 고발자,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도 이런 인용구가 있었다.“시스템은 한 개인의 반대를 착각으로, 두 사람의 반대를 감응성 정신병으로 매도할 수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은 편에 서면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이 된다.” -<루시퍼 이펙트>의 한 구절. 

기획/제작_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 출처_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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