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ㆍ1 운동 99주년이다. 3ㆍ1 운동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여 어떻게 거족적 독립운동으로 발전했을까? 3ㆍ1 운동은 19세기 말 이래 여러 갈래 민족운동이 하나로 모였다가 갈라져 나간 큰 호수와 같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논할 수 있다. 나는 당시 서울의 상황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3ㆍ1 운동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겠다.

서울은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의 중추기관과 유력인물이 밀집한 수도였다. 3ㆍ1 운동 당시 서울 인구는 25만 명 정도였는데, 일본인은 6만 6,000명으로 26%를 차지했다. 일본인의 전국 분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3%였던 것에 비하면 10배 이상의 밀도였다. 일본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실권을 장악한 서울에서 한국인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강한 압박과 차별을 느꼈다. 일본인 거리와 일본식 근대문명이 번창할 수록 한국인의 박탈감과 울분은 증폭되었다. 3ㆍ1 운동은 이렇게 속으로 끓고 있던 분노의 용광로가 폭발한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는 마치 3ㆍ1 운동을 예견한 듯한 기사를 실었다. “고종의 국장의(國葬儀)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자, 팔방에서 몰려오는 참열자(參列者) 배관자(拜觀者) 때문에 경성은 마치 회오리바람의 중심인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은 경성을 중심으로 한 열차 승객의 격증이다. 27일 본지의 석간에서 기재한 것처럼, 각지로부터의 단체 승차는 도저히 수용 불가능하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는 절대로 신청을 거절하고 있지만, 이들 단체가 개인으로 승차한다면, 보통열차는 한층 더 혼잡하게 된다. 27일 아침 부산을 출발하여 같은 날 밤 남대문역에 도착한 열차는 전시 군대수송의 광경 그대로였다.”(1919년 3월 1일).

당시 조선철도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경영했는데, 이 회사는 고종의 인산(因山, 3월 3일)에 참가하려고 서울로 몰려드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 단체 승차를 아예 거절했다. 전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에 몰려든 참배객이 터져버린 용광로에 기름을 부었고, 그들이 열차를 타고 각 지방에 흩어져 요원의 불길을 만들었다. 서울이 ‘회오리바람의 중심’이었고, 철도가 태풍의 길잡이였다. 당시 서울은 사방으로 뻗은 철도의 결절지역이었고, 철도 연선의 주요 도시는 번갈아 열리는 5일장의 거점이었다. 3ㆍ1 운동은 거미줄처럼 짜인 교통망을 따라 전국으로 퍼져, 2,000여 차례의 시위에 200여 만 명이 참가하는 거족적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3ㆍ1 운동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일제는 잔혹하게 탄압했다.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소요일람지도(騷擾一覽地圖)’는 ‘1919년 4월 30일 현재’라는 간기(刊記)와 ‘극비(極祕)’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는데, 3ㆍ1 운동이 발생한 지역과 일제가 총기를 발포한 지역을 붉은 점으로 표시했다. 붉은 점은 전국에 퍼져 있지만, 서울과 평양, 그리고 이와 가까운 경기도, 충청남북도, 황해도, 평안남도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경부선ㆍ경의선 연선에 많고, 호남선ㆍ경원선ㆍ함경선 연선이 그 뒤를 잇는다. 일제가 침략과 지배의 흉기(凶器)로 부설한 철도를 한국인은 저항과 연대의 이기(利器)로도 활용했다.

3ㆍ1 운동은 일제의 포악한 지배 아래서도 한국이 독립국이고 한국인이 자주민임을 당당하게 선언했다. 3ㆍ1 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나아가 3ㆍ1 운동이 내건 공명정대한 비폭력 평화주의는 아시아ㆍ아프리카의 민족운동을 촉발시켰다.

다행히 서울에는 3ㆍ1 운동의 궤적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서울시는 3ㆍ1 운동 관련 장소를 발굴하고 보전하는 사업을 꾸준히 벌여왔다. 그리하여 문화재나 현충 시설로 지정된 곳 이외에도 웬만한 곳에는 안내표석이 설치되고, 독립만세시위 경로를 따라가는 올레길도 조성되었다. 오늘만이라도 3ㆍ1운동 유적을 돌아보며 겨레의 함성에 공명(共鳴)하기를 권한다. 사정이 허락하면 열차를 타고 지방에 가서 서울소식을 전하면 더욱 좋겠다. 내년이면 3ㆍ1 운동 100주년이다. 서울이 온 겨레가 한데 어울리는 화합과 대동의 용광로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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