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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성추행 “취해서 기억 안나”…술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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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성추행 “취해서 기억 안나”…술 탓일까?

입력
2018.02.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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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감정ㆍ충동 조절하는 뇌 전두엽 기능 억제해 성범죄 연관

다사랑중앙병원 제공
다사랑중앙병원 제공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성범죄 발생과 은폐를 조장하는 잘못된 음주문화도 함께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알코올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무형 원장(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장)은 “알코올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뇌 전두엽 기능을 억제하는 물질로 성범죄와 연관성이 상당히 높다”며 “하지만 ‘술 마시면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는 관대한 음주문화로 성범죄가 발생해도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까지 원인을 술 탓으로 치부해 사건이 은폐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술 마신 뒤 일정 기간 기억이 나지 않는 필름 끊김, 즉 블랙아웃(Blackout)은 뇌에서 새로운 기억들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해마 부위가 손상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리 머리를 부여잡고 애를 써도 전날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만취 상태의 기억이 뇌에 저장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는 블랙아웃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아 술에 취해 저지른 일도 쉽게 용납되고 심지어 재미있는 에피소드, 영웅담처럼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며 “이 때문에 실수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인 상황도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 내 성추행 사건 역시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오래 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해명해 논란이 불거지며 국내 미투 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 원장은 “만일 미투 운동이 이슈가 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술 취해 저지른 실수’라며 넘어갔을 것”이라며 “음주는 엄연히 술을 마시기로 한 본인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에 그 행동 결과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이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단순히 법적인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미투 운동을 계기로 잘못된 음주문화와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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