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여론 의식 노출 자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최로
숙소서 비밀리에 오찬회동 가져
김영철 “대화 문 열려 있다” 재차 강조
이번에도 사진ㆍ영상 공개 안 해

남북 핵 담당자들도 배석
“양측, 구체적 조건 조율” 관측 속
한반도 문제 해결 분수령 될 수도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나고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6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비공개 회동은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숙소로 활용 중인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이뤄졌다. 남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는 얘기까지 들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김여정 중앙위 제1부부장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김 부위원장 방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 외부 노출을 자제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북미대화 타진을 위해 외교부 당국자를 만나는 등 챙길 것은 챙기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최로 낮 12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북측 고위급대표단과 공동오찬을 가졌다”고 밝혔다.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나서야 나온 발표였다. 비공개 회동인 만큼 출입기자 취재는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가 사후 공개한 회동 사진이나 영상도 없었다. 자리에는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함께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대미외교를 담당하는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이 자리했다.

이날 만남이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진 건 김 부위원장 방남을 둘러싼 남측 보수진영의 여론을 정부가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부위원장은 2010년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폭침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어 사건 배후로 지목된 논란의 인물이다. 정부는 북한이 대표단 파견 목적을 “폐막행사 참가”로 밝혔다는 점을 명분으로 들어 방남을 수용했으나, 방남 거부 및 반대 목소리가 지속돼 왔다. 이에 폐회식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북한 대표단의 외부 노출을 자제해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오찬 역시 당초 서울 시내 다른 호텔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오전에 급히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역시 과한 행보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남한을 지렛대로 삼아 북미대화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남한 정부 입지를 좁혀 득 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북한 대표단은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지령이자 방남 목적에 다름없는 북미대화 타진에 초점을 두고 일정을 수행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공개 접견에서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이날 정의용 실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미국과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두문불출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면서도 실속은 확실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이날 오찬 자리에 이도훈 본부장과 최강일 부국장이 함께 배석한 것도 관심을 끌었다. 남북의 핵 문제 담당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북미대화 성사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두고 양측이 조율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회동에서 나온 논의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보수성향 단체인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은 이날 북한 대표단이 머무는 호텔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집회를 열고 인공기를 태우며 김영철 부위원장 등의 방남을 규탄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회원들이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입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얼굴이 담긴 현수막을 훼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