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지난 일요일에 끝났다.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과 코치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동(感動)이란 눈물을 선사하였다. 감동은 자연스럽고 쉽게 전염된다. 선수들은 스스로에게 ‘완벽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수련한 자들이다. ‘완벽한 자신’이란 스스로에게 감동적인 존재다. 이상화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결선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는 나였다’라는 해시태그를 남겼다. ‘나는 나에게 감동적인 그런 나다’라는 뜻인 것 같다. 자신에게 감동적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감동적이다. 자신에게 감동적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 감동에 전염되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선수들은 우리 안에도 자신에게 감동적인 더 나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는 문구는 ‘출애굽기’ 3장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발견한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감동적인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는 대중문화를 창조하였다. 이집트나 바빌로니아는 왕이나 귀족과 같은 특권계층을 위한 폐쇄적인 문화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픽’과 ‘비극공연’이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발전시켰다. 올림픽이나 비극공연은 세 부류가 참여하여 만든다. 경기나 공연을 조직하는 기획자들, 선수들과 배우들, 그리고 관객이다. 관객들은 이 문화를 통해 정정당당(正正堂堂)과 연민(憐憫)을 배운다. 올림픽은 가장 효과적인 민주주의 교육이다. 정정당당과 연민은 인간을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정정당당’이란 공정한 ‘경쟁(競爭)’이다. 관객으로 경기를 보는 우리는 대한민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경쟁상대는 자신이다. 게으른 자신, 절제하지 못하는 자신, 자신을 관리 못하는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자신, 올림픽 경기에 뛰는 자신과의 경쟁이다. 다른 선수와의 경쟁은 몇 분이지만, 나와의 경쟁은 4년이다. 올림픽경기는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수련의 자연스런 연장이다. 자신을 정복하는 자가 세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을 그리스어 ‘아곤(agon)’이라고 불렀다. ‘아곤’은 버리고 싶은 자신, 극복하고 싶은 자신에서 자신이 흠모하는 자신, 자신에게 감동적인 자신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아곤’에서 파생한 영어단어 ‘애거니(agony)’의 뜻처럼 ‘고통스럽다’.

‘연민’이란 편견에 감금되어있는 자신을 ‘해방(解放)’시키려는 노력이다. 감동적인 영화나 연극은 눈물을 자아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을 설명한 ‘시학’에서 연민을 언급한다. 비극은 관객들에게 ‘공포’와 ‘연민’이란 감정을 이입시킨다. 비극의 주인공이 겪는 운명적인 고통에 공포를 느끼며, 그의 처지를 공감하여 연민을 느낀다. 이승훈 선수가 매스 스타트에서 승리한 후 무대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없어지고, 내가 이승훈 선수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연습’을 ‘엑스터시(ecstasy)’이라고 불렀다. 교육은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느끼는 수련이다. 연민은 내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쓸데없는 감정을 정화시킨다.

나에게 가장 감동은 준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우승한 일본선수 고다이라 나오다. 그녀는 이 경기에서 36.94초로 올림픽 기록을 갱신하였다. 경기를 마친 그녀의 행동은 나에게 깊은 감동의 여운을 남겼다. 그녀는 승리도 취하지 않고 곧바로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고 일본관중석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눈으로 조용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고다이라 다음에 바로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이상화가 경기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금메달이 아닌 정정당당과 연민을 위해 훈련해왔다. 정정당당과 연민이 금메달처럼 보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그녀가 운동하는 근거다. 승리를 만끽하고 자아도취의 순간에, 그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과감히 절제한 것이다. 환호소리가 이상화의 경기에 영향을 끼치면 자신의 소중한 가치인 정정당당을 훼손하고 자신이 너무 기뻐하면, 연민의 정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고다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상화를 배려하였다. 이 순간은 그녀가 평상시 간호사로 장애인병원에서 장애우를 치료하던 마음가짐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끊임없는 자기수련의 발현(發顯)이다.

고다이라는 트랙에 앉아 이상화선수의 질주를 말없이 관찰하였다.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눈물을 헌사하고 있는 이상화에게 다가가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위로하면서 한국어와 영어로 말을 건냈다. “잘했어. I still respect you(나는 너를 아직 존경하고 있어).” 나도 그녀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 수련해야겠다. 한일 지도자들로 이들의 마음을 배우면 좋겠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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