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질서 교란하는 미국의 통상압박
일자리 전쟁에는 국경도 이성도 없는데
과연 우리는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지인의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든 행태는 돈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지만, 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일관된 흐름이 있고 그의 기행에 대한 의문도 많이 풀린다는 내용이다. 돈이 된다는 것은 거래에서 이익이 남는다는 뜻이다. 트럼프 개인에서 국가 단위로 확대하면 국가 이익이다. 트럼프가 그토록 부르짖는 미국우선주의도 같은 맥락이다.

우방국조차 압박해 미 국민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무역역조도 개선하자는 것이다. 물론 미국 내 일자리 감소나 물가상승, 소비자 선택권 제한 등의 역효과도 있다. 삐딱하게 보자면 트럼프와 주변의 석유ㆍ무기 업체에 이익일 수 있다. 대폭적 법인세 인하조치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자신의 기업도 큰 이익을 본다.

기업인은 돈 냄새를 잘 맡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과 압박 전문가다. 그는 돈 앞에서 체면도 자비도 없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으로 아킬레스건을 찔러야 돈이 됨을 잘 안다. 안보 심리를 자극해 통상에서 양보를 얻거나 통상압박으로 안보 분담금을 올리는 식이다.

돈과 관련된 그의 화법은 매우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최근 사회간접자본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는 “우리는 중국 일본 한국에 어마어마한 돈을 잃었지만, 그들은 25년째 살인(미국의 무역적자)을 저지르고도 어떠한 처벌도 없다”고 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는 독일을 도왔고, 한국전쟁 후에는 한국을 도왔다. 그들은 엄청난 부자가 됐으며 상당한 양의 돈을 지급할 수 있었고 우리에게 돈을 돌려줄 수도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GM이 벌써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소식은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연일 밀려드는 통상압박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온 게 아니라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는 최근 상ㆍ하원 의원 간담회에서도 “한국과 매우, 매우 나쁜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고 했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를 ‘재앙’이라거나 ‘끔찍한 협정’이라고 밝혀 왔다. 이후 한국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관세폭탄을 퍼부으며 우리를 괴롭힌다.

미국 내에서 무역적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수십 년 전부터다. 1980년대 초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유린할 때 디트로이트에서 실직한 미국 노동자가 중국계 노동자인 ‘빈센트 친’을 일본계로 착각해 야구방망이로 살해하고도 무죄로 풀려난 일이 있었다. 한국계 크리스틴 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미국과 일본 간 자동차 전쟁의 비극적 사례로 종종 인용됐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에 대한 우려 시각도 나타났다. 1994년 발간된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물결의 정치-새로운 문명의 창조’에 흔적이 남아 있다. “소비자의 주머니에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곧 해외로 유출되기 때문에 국내 경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미국인이 새로 TV 세트나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CDP)를 사면 그 돈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유출될 뿐이다.” 트럼프의 시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이 국제 무역질서를 거부하거나 깡그리 무시하면 주먹이 법이 된다. 중상주의 시대 이래 강대국은 군사력을 앞세워 자국 이익을 챙겨 왔다. 한국GM에도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걸려있고, 세탁기 철강 반도체 등에 관세폭탄이 떨어지면 국내에서 수만 명의 일자리가 날아갈 수 있다. 일자리 전쟁에는 이미 국경도 이성도 없다.

“산업에서 경쟁은 곧 전쟁이다.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무지막지한 경쟁의 논리적 귀결은 전투에 참여한 사람 중 일부가 죽고 나머지는 모두 다치는 것이다.” 1901년 당시 미국 최대기업 엔빌롭스 컴퍼니의 제임스 로건 회장이 쓴 글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명언이다. 이 명백히 현존하는 위협에 우리는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가.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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