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벌써 15년 전 영화인 ‘살인의 추억’ 속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제야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 이곳은 2018년의 대한민국이다. 답은 참담하게도 ‘그렇다’이다.

세계적인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시상식 철만 되면 근엄하게 호명되던 시인과 문화 게릴라를 자처하던 한국 연극계의 거목 연출가가 모두 고질적 성폭력범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이윤택 연출가와 그가 속해 있던 연희단거리패의 행태에 대해서는 하루에도 몇 건씩 고발이 이어지고 있어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다.

무려 조직적 은폐를 위한 리허설이 있었다는 내부고발이 있었던 사과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관습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예로부터 되풀이되어 온 집단적 행동 양식’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이보다 정확하게 이들의 문화를 설명해주는 단어는 없을 듯하다.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이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랜 시간 동안 풍습처럼 이어져 온 성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이게 바로 오늘의 한국 사회를 ‘강간의 왕국’으로 만든 강간 문화다. 이들이 왕으로 군림하던 업계에서 얼마나 더 많은 성폭력이 관습적으로 벌어져 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더 알려진 이들의 행각이 더 큰 스피커를 가진 언론을 통해 고발되면서 이제야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여성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미투(#Metoo)’ 해시태그 운동에 앞서 ‘#OO계_내_성폭력’이라는 구체적 해시태그로 자신들이 속한 업계에서 겪은 일을 폭로하고 고발한 한국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나도 당했다”는 고발에 앞서 이미 가해자가 어디에 속한 사람이며, 그 분야의 어떤 고질적 행태 안에서 성적인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를 명확히 명시했던 운동으로 오늘의 흐름에 분명히 이어져 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검찰계 내 성폭력이며, 현재 문화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폭로는 연극계 내, 문학계 내, 영화계 내 성폭력이다. 이렇게 가해자들의 위치를 명확하게 할 때 성폭력은 ‘OO계’로 호명된 업계 산업의 구조, 현실과 동떨어져 무관하게 존재하는 범죄가 아니라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업계 전체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몇 십 년씩이나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묵인했던 그 관습, 분위기, 안일함,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반성하며 변화를 꾀해야만 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더는 ‘그 정도는 늘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나 예술이나 직업적 성취를 한 인간의 도덕성과 분리하려는 시도로 대충 성범죄를 묻어버릴 수 없다. 설사 그래서 한 업계의 많은 부분이 무너지고, 어쩌면 한국 사회가 뒤집어지게 되더라도 이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강간의 왕국이라면 무너지는 것이 맞지 않은가.

무너질 것을 각오하고 지켜보고 있음에도 지독한 환멸은 이어진다.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성범죄자를 수사하라는데 예술이 모독을 받는다며 우는소리를 하는 이들과 이런 업계인 줄 몰랐느냐며 멀찍이 서서 냉소하는 이들,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피해자의 고통을 관음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언론에는 희망이 없다. 이 나라를 강간의 왕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게 할 희망은 상처가 헤집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용기 있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들과 이 소리가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리는 소리이기를 바라며 연대하는 이들에게 있다. 강간 문화를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고자 지속적으로 애쓰는 여성들에게 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성범죄자를 처벌해 달라며 국민들이 청원을 하기 전에 당연히 수사에 착수하고 범죄에 준하는 마땅한 처벌을 내리는 시스템으로 비로소 지켜질 것이다. 가해자들의 왕국을 끝내기 위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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