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1>정두언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정두언 전 의원. 고영권 기자

나이 쉰이 채 안돼 최고 권력을 만들었다. 2인자의 지위를 구가할 수도 있었지만 정적들에 밀려났다. 떼밀려 간 곳은 구치소. 열 달 옥살이를 하면서 신을 ‘다시’ 만났다. 3선 국회의원으로 복귀했으나, ‘도루묵 삶’이 됐다. 4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 낙선 뒤 찾아온 건 극심한 우울증. 목을 맸지만 신은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정치 인생의 동반자이자 동업자였던 아내와 갈라섰다. 그 덕에 새 인연을 만났는지도 모른다(그는 올해 재혼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제2의 생을 살고 있는 그, 정두언이 ‘삶도’ 인터뷰의 첫 주인공이다.

“내가 악몽을 꾼 건가. ‘여기가 어디지’ 싶더라고. 가죽벨트로 맸는데.”

얼마 전이었다. 그 엄청난 얘기를 정두언(61) 전 의원은 대창을 씹다가 말했다. 가까운 기자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이 양반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어제 본 드라마 얘기를 하는 것보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오니까 정말로 힘들더라고. 목을 맸으니까. 지옥 같은 곳을 헤매다가 눈을 떴어. 한동안은 여기가 어딘지 가늠이 안되더라. 내 딴엔 짱짱한 걸 찾는다고 벨트를 썼는데…, 그게 끊어진 거야.”

그 사연을, 그래서 다시 얻은 삶을 진지하게 들어봐야겠다고 그 때 생각했다. 인터뷰의 취지를 듣더니 정 전 의원은 대뜸 말했다.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에 제일 어렵겠네요.” 그리곤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하긴, 내가 드라마틱하게 살긴 했지.”

-맞다. 정권을 만들었고, 음해 당했고, 감옥에 갔고, 무죄로 풀려났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더니, 그 이후가 더 극적이다.

“모 신문사 주필이 예전에 그러더라고. ‘이 양반은 정치를 무슨 드라마처럼 해.’ (웃음) 맞는 말이긴 하다. 지금 생각하면 (정치 말고) ‘쇼 PD’를 했으면 잘 했을 것 같다. 적성에 맞거든. 그런데 우리 때는(정 전 의원은 57년생이다) 공무원이 되거나, 은행 아니면 대기업 이런 데 들어가는 것만 꿈 꿨지, 기자나 PD 될 생각은 못했다.”

-감옥(구치소)을 평소에 ‘국립기도원’이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열 달 동안 뭘 느꼈나.

“거기선 할 게 생각 아니면 독서 밖에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명상을 했었어야 해. 그래서 요즘 명상을 배우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 고영권 기자

‘말’로는 정계에서 그를 따라잡을 사람이 많지 않다. 진영을 가리지 않는 ‘직설화법’은 신문기사의 단골 헤드라인으로 차용됐다. 자신이 개국공신인 이명박 정부를 향해선 ‘실패한 정권’,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를 하던 때엔 버티다 굽히고 마는 대표를 일컬어 ‘30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던 촌철살인은 유명하다. 그렇게 쏟아내고 살았던 그가 명상을 한다고?

-왜 명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나?

“나이가 드니 내면에 관심이 생기더라.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다. 굳이 인생을 구분해보자면, 서른까지는 배우는 기간, 육십까지는 일, 그 이후는 ‘죽는 준비’ 아닌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결국 내면의 힘이다. 그 힘을 기르려고 명상도 배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느 날에는 죽는다는 걸 인정하고 죽음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면 굳이 비굴하게 살 필요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며 살 이유도 없는 거다.”

-왜 극단적인 행동을 했던 건가.

“인간이 본디 욕심덩어리인데, 그 모든 바람이 다 수포로 돌아갈 때,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겠구나’ 생각이 들 때, 삶의 의미도 사라진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거다. 급성 우울증이 온 거지. 사실 (2016년 총선) 낙선 자체는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잖나. 친박의 행태와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으니 (보수당이) 잘 될 리 없었다. 문제는 낙선 뒤였다. 고통에서 피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 자살을 택한 거야. 14층 건물에 불이 나서 불길에 갇힌 사람이 뛰어 내리는 거나 비슷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병원을 찾았다. 그냥 있으면 또다시 스스로 해칠 것 같아서. 생각해보면 진짜 나도 살면서 가지가지 한다 싶다.”

-구치소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지 않았나.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거기가 희한하게도 살면서 저지른 잘못을 수없이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초등학교 때 여자애들 괴롭힌 것까지 생각 난다. 사소한 것부터 큰 잘못까지. 급기야 ‘내가 정말 끔찍하게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에 치가 떨리더라.”

-그 때 생각한 삶이란 뭔가.

“(재판 중에) 경황 없이 법정 구속을 당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라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처음 사흘 간은 (가족들이) 면회를 오니 어찌어찌 보냈다. 그러고서 일요일을 맞았는데, 처음으로 진지하게 여기서 어떻게 지내야 할 지를 생각해봤다. 어찌됐든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다가 ‘아 오늘이 일요일이지’ 하곤, 퍼뜩 ‘예배를 봐야겠다’ 싶더라. 그 전에도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신앙심이 깊진 않았다. ‘여기 있는 동안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마음 먹고 그날부터 시작해서 하루 세 번 ‘방’ 식구들과 예배를 봤다.”

-신앙이 희망이었던 건가.

“그렇다. 진정한 신앙인이 되겠다는 목표와 희망. 출소하는 날도 자정에 나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방 식구들과 울면서 찬송하다가 나왔다. 그거 아는가? 그 안에도 평화와 자유가 있다.”

-의외다. 감옥이란 속박의 공간 아닌가?

“거기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곳 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알고 보면 세상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곳이 아니다. 물론 제한돼있긴 하지만, 감옥 안의 시간은 온전히 자기 것이다.”

-출소 뒤 삶이 달라졌나?

“세상에 나오니까 점점 도루묵이 되더라(웃음). 나를 기다리는 건 배신이었다. ‘이제 정두언은 끝났구나’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평온이 깨지고 분노와 증오가 서서히 생겨났다.”

그는 허무하게 웃었다. 하기 쉽지 않은 얘기를, 어렵지 않게 하면서.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경험이 준 것은 무엇인가.

“치유하는 삶. 그래서 카운슬링(심리상담)을 배웠다. 인터넷 강의로 올해 초에 자격증도 땄다. 심리 상담사와 분노조절장애 상담사. 앞으로 임상 수련도 할 거다. 칠십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카운슬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카운슬링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도 스스로 카운슬링이 되거든. 나도 치유하고 남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나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본 사람이 드물지 않나. 그런 만큼 상담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두언 전 의원. 고영권 기자

-여의도를 떠나서 바라보는 정치는 어떤가.

“기능만 따지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 통합이랄지, 이해관계 조정이랄지.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정치란 결국 거짓과 기만, 위선의 세계다. 지금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그런데 인간이란 게 참 어리석다. ‘불 옆에 가까이 가면 덴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데어 봐야 안다.”

-다시 정치를 한다면?

“정치인은 멀리서 보면 좋아 뵈는 ‘100미터 미인’이다. 다시 한다면 ‘1미터 미인’이 되고 싶다.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음반을 낸 ‘4집 가수’다. 노래 말고 또 문을 두드리는 분야가 있나?

“연기. 어렸을 때부터 영화(배우)를 하고 싶었다. 전문적으로 연기도 배웠지. 그런데 잘 캐스팅이 안돼(웃음). 악역을 잘 할 수 있는데.”

말미에 그는 소설 ‘큰 바위 얼굴’ 얘기를 꺼냈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렸을 때부터 큰 바위 얼굴 모양의 산을 보면서 언젠가는 실제로 저 산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리라는 믿음을 키운다. 재력가와 장군, 정치인, 시인을 만나지만 모두 어니스트가 바랐던 현실의 큰 바위 얼굴은 아니었다. 평생 큰 바위 얼굴을 기다렸지만, 알고 보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큰 바위 얼굴은 어니스트 자신이었다는 얘기다.

-삶의 도, 삶의 길이 뭐라고 생각하나.

“아직도 모르니까 이렇게 사는 것 아니겠나(웃음). 어렸을 때 롤 모델이 ‘큰 바위 얼굴’이었다.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다 그렇게 되는 것. 아직은 아닌 거지.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직은 내가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주제 파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게 감사하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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