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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교실 탈락에 "학원 뺑뺑이 시켜야 하나요" 곳곳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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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교실 탈락에 "학원 뺑뺑이 시켜야 하나요" 곳곳 탄식

입력
2018.02.23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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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학년 33명 뽑는데 82명 신청

탈락 가족은 여기저기서 원성

서울 지역 신청 올해 7% 늘어

교육당국은 예산 부족 호소

21일 경기 김포시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돌봄교실 입실을 위한 학부모 공개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신지후 기자
21일 경기 김포시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돌봄교실 입실을 위한 학부모 공개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신지후 기자

“마지막 33번째 합격자, 뽑아주세요.”

21일 오전 10시 경기 김포시 S초등학교 시청각실. 한 학부모가 추첨함에서 33번째 합격자를 나타내는 숫자 쪽지를 들어올리자마자 100여명의 학부모들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올해 이 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이나 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4, 5시간 가량 돌봄전담사들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초등돌봄교실‘ 입실 학생 추첨 자리였다. 총 82명 학생이 신청서를 접수했지만 입실 가능 인원은 33명뿐, 경쟁률이 무려 2.5대 1이었다.

추첨은 학부모가 신청서를 접수하며 번호를 부여받고, 추첨함에서 해당 번호가 뽑히면 입실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추첨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 이후로는 출입이 불가능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추첨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탓에 양복을 차려 입은 아빠, 엄마는 물론 흰 머리가 빼곡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찌감치 학교로 총출동했다. 사실 S초교는 학생 22명씩 3반, 총 6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돌봄교실을 마련해 인근 학교보다 여건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입실 1순위(저소득층 자녀 등 국가지원대상 가구)ㆍ2순위(학부모가 맞벌이이면서 세 자녀 이상인 가구) 학생 33명이 이미 절반을 차지하면서 3순위인 ‘맞벌이 부모’들은 치열한 추첨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30여분 간의 숨막히는 합격자 및 대기자(15명) 추첨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탈락한 학생 가족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는 “내 숫자가 적힌 종이가 제대로 들어가긴 했느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교사들은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며 이들을 달랬다. 이날 회사에 오전 반차(하루 중 절반만 휴가)를 내고 추첨에 참여했다는 학부모 김모(37)씨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하교하면 오후 1시 안팎이라 부부가 퇴근하는 7시까지 6시간의 ‘돌봄공백’이 생긴다”며 “결국 추첨에 성공을 못했으니, 주변 공부방이나 학원을 추가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전국 초등학교 곳곳에서 막바지 돌봄교실 입실 추첨이 진행되면서 맞벌이 학부모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입실 수요는 날로 느는 데 반해 돌봄교실 수나 수용 인원 확충은 더딘 탓이다. 돌봄교실은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학교 울타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돌봄교실을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교실로 확대하고 대상 역시 초교 전 학년으로 확대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선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교실 확충도 버거운 처지다.

새 학기를 코 앞에 둔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돌봄교실에 입실하지 못해 아이 맡길 곳을 구해야 하지만 가족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학원 문을 두드려야 할 수밖에 없다. 경기 부천의 예비 초1 학부모 김성애씨는 “방과후학교도 요일ㆍ학년 별로 운영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조만간 진행되는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하면 현재 이틀 정도만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매일반으로 등록할 예정”이라며 “하지만 이 것도 하루 한 두 시간이기 때문에, ‘학원 뺑뺑이’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주위에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돌봄교실을 증축해야 한다’는 청원이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서울 지역의 경우 올해 돌봄교실 신청자가 3만8,083명으로 지난해(3만5,566명)보다 7% 늘어났을 정도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 당국의 대응은 안일하다. 22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돌봄교실 수는 2015년 1만2,380실(23만9,798명)에서 2016년 1만1,920실(23만8,480명)로 되레 460실 줄었다가, 지난해 1만1,980실(24만5,303명)로 겨우 회복했다. 밤 10시까지 맡길 수 있는 온종일 돌봄교실은 전국 1,230실(1만238명) 뿐이다.

돌봄교실 운영 실무를 맡는 교육청들은 돌봄교실 확대가 느린 배경으로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꼽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초등 저학년 교실을 돌봄교실로 내어주려고 하지만, 비용 부담이나 인건비 등 부담이 적지 않은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학교 빈 교실에 유치원ㆍ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동시에 늘면서 교육당국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새 학기가 본격 시작되기 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서울 초2 학부모 김재연(41)씨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환경을 계속 만든다고는 하는데, 정작 4학년인 첫째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며 “학교 도서관이나 시청각실, 강당 등이 있을 테니 이를 활용해서 한 두시간이라도 돌봄 공백을 메워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각 교육청 부교육감 및 실무자 회의를 통해 현황을 파악한 뒤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21일 경기 김포시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돌봄교실 입실을 위한 공개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신지후 기자
21일 경기 김포시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돌봄교실 입실을 위한 공개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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