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성폭력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 고은 시인 등이 문화계의 대표적인 진보 인사라는 점을 들어 ‘좌파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성폭력은 좌ㆍ우의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지위의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권력의 문제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더 냉철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진보 정권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권력일수록 타인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자기에겐 엄격해야 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2012년 초 작가 공지영이 명품백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 팀과 미국 공연을 가면서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명품백을 들었다는 보수언론 보도 탓이었다. 공지영은 명품백이 아닌 허접한 백이며, 비즈니스석도 이코노미석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꼼수 팬들은 한발 더 나가 “진보는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느냐”며 옹호했다.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사람은 가진 재산 포기하고 거지처럼 사는 게 맞나”라는 반응도 나왔다. “약자인 척, 진보인 척 하지 말라”는 공격을 의식했기 때문일 게다.

▦ 문화계 성폭력 사태가 진영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연출가 이윤택, 고은 시인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진보 인사다. 고은을 ‘괴물’로 묘사했던 최영미 시인은 남성문인 4명의 성추행 의혹도 추가 제기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엊그제 여성비하 논란을 빚었던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을 언급하며 “소위 진보정당이라는 사람들, 청와대, 여성단체 전부 입을 다물고 있다”며 “좌파 운동권의 도덕성에 대해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불을 지폈다.

▦ 예술가란 자유분방하고 기득권 질서에 저항하는 속성이 있어 진보 성향이기 쉽다. 의혹이 제기된 성폭력 가해자 중에도 진보 인사가 많다. 더욱이 문화예술계는 유명 작가와 연출가, 지휘자가 왕처럼 군림하는 특수한 세계다. 이윤택이 18년간 ‘관습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자, 이번 사태를 진영 논리로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화계를 벗어나면 ‘색(色)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성 추문이 훨씬 많다. 성폭력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약자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권력의 문제다.

▦ 인권과 약자 보호는 민주주의 기본정신이다. 그럼에도 진보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게 사실이다. 흔히 진보가 기득권층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라면 약자의 아픔,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줄 아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신 자신에겐 더욱 엄격해야 한다. 자기 반성과 교정 능력이 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권력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고 약자와 공감할 자신이 없다면, 말과 글로라도 진보주의자인양 해선 안 된다. 입으로만 사는 진보는 사이비 진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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