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위를 기록한 이상화가 1위 일본의 고다이라의 위로를 받고 있다. 강릉=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평창을 다녀왔다. 진부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해 올림픽 플라자 등을 둘러보았다. 전에 보았던 기억 속 평창이 아니었다. 첩첩산중에 KTX역이 생기고, 수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스타디움이 들어선 그곳은 예전 월정사 가는 길 잠시 들렀던 진부 마을이나, 스키장 가던 길목의 횡계 마을과 달랐다. 올림픽이 바꿔놓은 풍경이다.

우린 평창에서 올림픽의 또 다른 무한한 힘을 확인하고 있다. 한반도에 일촉즉발 전운이 감돌던 때가 언제냐는 듯 북한은 육ㆍ해ㆍ공 모든 루트로 올림픽 사절단을 보내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백두혈통’ 김여정 북 노동당중앙위 제1부부장이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에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도대체 올림픽이 뭐길래.

현대 올림픽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그 존재 이유로 들고 있다. 평창은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게 평창은 모처럼 올림픽 본연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사활을 걸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성사에 매달릴 만했던 이유다. 단일팀은 시작 전의 논란을 딛고 서로를 보듬으며 일취월장 했고, 결국 올림픽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평창처럼 올림픽이 항상 긍정적이었던 건 아니다. 올림픽은 ‘최초의 국제적인 평화운동’이란 평가와 함께 ‘스포츠를 대리전쟁으로 변형시켰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1936년 나치 독일에서 열린 올림픽은 스포츠를 정치적 조작의 도구로 사용한 대표적 사례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치열할 땐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목적으로 나라가 스포츠활동을 육성하는 국가 프로페셔널리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멕시코의 군사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1968년의 멕시코시티 대회처럼, 1988년 서울올림픽은 군부통치를 정당화하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오로지 1988년을 위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시작 단계의 현대 올림픽은 변변치 못했다. 다른 국제 행사의 부속 행사로 치러졌던 대회로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00년 제2회 파리 대회는 만국박람회,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대회는 루이지애나주 100주년 박람회에 딸린 이벤트였다. 하지만 만국박람회는 사라졌고 올림픽은 더욱 커졌다. 부속 행사로 취급되던 올림픽이 전세계 가장 큰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그 내재된 힘은 뭘까. 민족주의를 벗어나 스포츠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을 주도했던 쿠베르탱의 집념만으론 설명이 쉽지 않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레이스를 끝낸 이상화가 눈물을 터뜨릴 때 우린 함께 울먹였고, 12년의 올림픽을 치른 그의 땀과 고통을 눈물 한 방울로 공감할 수 있었다.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이상화에게 다가가 “잘했어”란 한국말과 함께 “너를 여전히 존경한다”며 포옹하는 장면에선 또 다른 감정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상대에 함께 오른 최민정과 킴 부탱(캐나다)이 손으로 함께 만든 하트는 그악스런 악플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세리머니였다. 승자와 패자가 서로에게 보내는 훈훈한 미소에서 우리의 허름한 가슴도 함께 위안을 받았다.

평창의 감동 드라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IOC와 평창 조직위는 올림픽 이후의 레거시(유산)를 걱정한다. 깔린 철도와 남은 경기장만이 그 유산은 아닐 터. 저마다 마음 속의 평창을 새겨야 할 때다. 올림픽이 끝나면 평창이 달라져 있듯, 우리 자신도 달라지게 할 유산 하나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올림픽이 뭐길래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 말이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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