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주행을 위해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 출발선에 선 윤성빈 선수. 그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새로운 스켈레톤 황제로 등극했다. 코리아타임스

피겨여왕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동계스포츠 영웅이었다. 썰매 위에 엎드려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얼음판을 질주하는 스켈레톤에서 당당히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윤성빈. 그의 실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이언 마스크를 쓰고 출발선에 등장해 발등을 퉁퉁 내려칠 때면 그는 이미 챔피언이었다.

인상적인 건 금메달을 딴 다음에 밝힌 소감이었다. “계속 생각하고 바라면 이뤄진다는 게 맞는 말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70㎏ 초반 몸무게를 늘리겠다면서 하루에 10끼를 먹어댔다는, 너무 많이 먹어 구토가 나오는데도 팔굽혀펴기는 매일 1,000번 넘게 했다는, 240㎏짜리 역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제자리점프를 1m 넘게 해낼 수 있는 허벅지를 만들어냈다는, 그런 피눈물 나는 노력의 과정을 견뎌낸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며 ‘고등학생 시절 공부하는 기계라 불렸던 친구’를 몇 번이고 떠올렸다. “생각하고 바라고 노력하면 윤성빈처럼 될 수 있을까?” “노력이란 진짜 뭘까?” 등 질문과 함께.

친구 역시 또래들 중에서 노력은 압도적이었다.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조차 아주 잠깐 조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잡담하거나 노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등수로 보자면 위보다는 아래쪽에 가까웠다. 게다가 1학년 첫 시험과 3학년 마지막 시험 성적도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기계처럼 공부하고, 기계처럼 비슷한 점수를 받아 들었다. 그 친구 위로는 늘 적당히 공부하고, 놀고, 벼락 공부를 했던,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성과 없는 노력이 얼마나 볼품 없는지, 또 어떤 식으로 철저히 무시당하는지를 조금씩 어렴풋하게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기계 같던 친구 노력이 우습게 보이기까지 했다.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지?”라는 의문이 “요령이 부족해서인가?”는 진단으로, “열심히 해도 별 수 없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무관심하기도 했다. “괜찮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잖아.” “그렇게 공부했으면 뭔가 남는 건 있겠지”라는 격려가 일부 있었지만 허무한 말이었다. 노력에는 재능, 부모 재력과 후원, 연고나 학력 같은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을 그 땐 몰랐다. 예컨대 친구가 그토록 열심히 풀고 있는 문제집과 참고서가 헌책이었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더 노력하지 못하는 자신과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을 자책했을 게 뻔한 친구는 그렇게 관심 밖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또 다른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나 그 중 많은 수가 재능, 학벌, 연고, 부모의 후원 등 갖가지 이유로 ‘노력은 배신당했다.’ 그들은 분명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그 결과는 지난해 22.7%에 달하는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현대경제연구원)과 같은 암울한 수치들이다. 최근 서울혁신센터에서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민인식조사에서 ‘한국사회는 실력보다는 연고나 학벌이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73.5%나 된다는 사실도 이젠 전혀 놀랍지 않다.

요즘 들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누구나 노력하지만, 아무나 성공하지는 못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윤성빈을 봐!” “노력하면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건 그저 헛말을 내뱉는 것뿐이라며 주춤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냥 “뭘 어떻게 더 해. 지금도 충분해”라는 격려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타협한다. 아무나 윤성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윤성빈이 되길 기대할 이유도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뱀다리 하나. 친구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실패했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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