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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폭력적 가족 벗어나려 미국인과 결혼했지만 ‘불행 반복’

입력
2018.02.19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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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어릴 땐 잠들기 전에 술을 드시다가 중학교 때 아빠가 집을 나간 이후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어요. 아빠랑 엄마는 제가 네 살 때 첫 번째 이혼을 했어요. 엄마는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었고 아빠가 바람을 피울 때마다 항상 술을 드셨어요. 아빠는 그런 엄마를 때리다가 머리까지 자르셨어요. 그래서 엄마는 가발을 쓰고 다녔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네 살 때 엄마가 과자 한 박스를 사주면서 꼭 따라갈 테니 아빠, 오빠랑 먼저 가 있으라고… 그러고는 새아주머니가 오시고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어느 날 엄마랑 아빠는 저희 때문에 다시 합치셨고 엄마는 또 술을 마셨죠. 아빠는 또 엄마 머리를 자르고 찬물을 바가지로 끼얹기도 했었어요. 무서웠는지 슬펐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엄마는 계속 술을 마셨고 아빠는 중학생 때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 엄마는 술을 마시고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하더니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졌어요. 오빠는 엄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고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세도 내고 연탄도 사고 했어요. 엄마가 외로웠단 걸 헤아렸어야 했는데 그땐 몰랐어요.

아빠는 고등학교 때 가끔 만났어요. 제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친척들과 싸우고 욕하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아빠를 평생 기다렸는데 돌아가셨다니 아주 큰 충격을 받으셨죠. 그 후에 저는 오빠와 사이가 안 좋아 집을 나왔는데 엄마는 그 뒤로 더 힘드셨나 봐요. 어느 날 연락도 잘 안 하는 사촌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그냥 다 꿈 같았어요. 장례식장에 가보니 외갓집 식구들이 와있었어요. 현실이더라고요. 제 모든 삶이 다 현실이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저는 다시 오빠랑 살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늦게 들어오면 말로 옮기기 힘든, 아주 심한 욕을 했어요. 어느 날은 ‘몇 시까지 안 들어오면 나는 창녀다’란 문서에 사인을 하고 집을 나가라고 하더군요.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은 미국 사람이에요. 한국에 파견근무 왔다가 저를 만나 불 같이 사랑한 뒤 한달 반 만에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어요. 하지만 저는 보통 가정처럼 행복할 순 없나 봐요. 다른 엄마들처럼 저도 제 아이에게 모든 사랑과 이해를 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신랑은 따라주지 않아요.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아이가 울어도 무섭게 그치라고 하거나 엉덩이나 손을 때려요. 아이가 울음을 그치기까지 기다려주려고 하면 그걸 아예 무시해버려요. 밥을 먹을 때도 식탁에 같이 먹지 않고 TV 앞에서 혼자 먹어요.

집에 있을 때는 저희랑 보내는 시간보다 자기 부모님, 친구들과 통화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요. 전에는 그런 걸로 많이 싸웠었어요. 아이들 앞에서 싸우고 싶지 않은데 뜻대로 안돼요. 신랑은 수시로 제 가슴을 잡고 흔들어 대거나 아이들 앞에서 제 바지에 손을 넣어요. 그럴 때 저는 이성을 잃고 악을 질러요. 지난 주에 제가 요리를 하는 동안 신랑은 또 휴대폰에 빠져있었고 아이 둘은 제 바지자락을 붙들고 있었어요. 화가 오를 대로 올랐는데 제가 거실을 지날 때 신랑이 제 가슴을 부여잡고 흔들더라고요. 그 순간 눈에 보이는걸 던지기 시작했어요. 소리지르고 발을 구르고 울면서 제발 가슴 엉덩이 만지지 말아달라고. 신랑은 또 저를 미친 여자 취급하고 나가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첫째가 제가 물건 던지는 걸 그대로 따라 해요. 그걸 보는 마음이 말로 설명 못 할 만큼 아파요. 제가 꿈꾸던 가족은 이게 아닌데.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모습을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고 있다니. 죄책감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신랑을 아는 사람은 모두 어떻게 그 사람이랑 사냐고 대단하다고 해요. 남의 감정을 잘 못 느끼고 군대에서도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일찍 제대했거든요. 카운셀링을 받으러 가자고 해도 우울증이 있는 네가 문제지 자기는 문제가 없대요. 이혼을 하자고 해도 말뿐이고… 전 학벌도, 특별한 기술도 없어서 이혼하고 나면 살 길이 막막해요. 왜 우리 아이들은 나 같은 엄마 밑에서 태어났는지. 저도 보통 가정처럼 행복해지고 싶어요.

남선화 (가명ㆍ38세ㆍ주부)

선화씨, 당신이 살아온 삶을 보니 마치 사파리 한가운데 버려진 아이가 떠올라요. 너무나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네요. 지금 선화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강박적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거예요.

선화씨는 남편을 만난 지 한달 반 만에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났어요. 보통 사람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선화씨에겐 쉬웠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있어 한국이라는 나라와 가족이란 전부 벗어나고 싶은 안 좋은 기억들뿐이었으니까요. 남편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빼내줄 구원자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남편은 어떤 마음으로 선화씨와 결혼했을까요. 선화씨가 사연에 쓴 대로 남편은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떨어져요. 이런 사람은 낯선 이 앞에선 지나치게 위축됐다가 친해지면 매우 유치한 면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어요.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성적인 접점 없이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남편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랑이 식었다든가, 아내에 대한 존중이 줄어든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불 같은 사랑이라고 표현된 그 기간에 대해 선화씨가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남편은 말 그대로 구원자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선화씨는 왜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아버지는 수시로 외도를 저질렀던 것 같아요. 배우자와의 믿음을 깼을 뿐 아니라 폭행을 하고 결국엔 자식을 버리기까지 했죠. 유기하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형태의 공격이에요. 아버지에게 버려진 자녀들은 ‘내가 오죽 못났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존재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의 절망감에 시달려요. 이런 상황에서 선화씨는 술 마시고 널브러진 엄마를 돌보기까지 해야 했어요.

선화씨의 엄마를 보면, 외도하는 남편 때문에 겪은 고통은 이해가 가요. 하지만 자녀들의 입장에선 엄마의 태도 역시 수동적인 형태의 공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차라리 화라도 냈다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했다면 좋았을 거예요. 그러나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분노와 상처를 오로지 술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술은 상대에게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해치는 가장 안 좋은 방법입니다. 선화씨의 엄마는 남편에게 사랑 받아야 할 아내인 동시에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엄마의 역할에 대해선 거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보지 않았어요. 이것도 타인에 대한 일종의 공격이에요. 수동적 공격입니다.

부모가 모두 이렇다면 오빠라도 선화씨를 따뜻하게 감싸줬다면 좋았겠지만 오빠는 한 술 더 떴죠. 선화씨의 인생은 기억하는 한 전부 공격뿐이에요. 선화씨가 결혼생활에서 꿈꾼 것도 공격 받지 않는, 안전한 삶이었을 거예요. 남편을 만났을 때 선화씨는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 관계에 주관적인 색채를 많이 입혔을 거예요. 어느 정도 판타지가 개입됐던 거죠.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오류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 오류를 반복하고 살아요. 이걸 강박적 순환이라고 합니다. 선화씨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강박적 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선화씨는 한국을 떠나 낯선 미국땅까지 갔지만 거기서도 불행이 반복되고 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마치 당신의 엄마처럼 무기력한 상태예요. 게다가 남편의 행동으로 인해 존재가 뭉개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끼고 있죠.

이 강박의 순환을 끊으려면 자기의 문제가 뭔지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차려야 해요. 특히 선화씨는 부모님을 너무 급작스럽게 여의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예요. 부모님에게 가졌던 분노, 원망, 미안함, 슬픔, 연민 중 선화씨가 당시 느꼈던 감정이 뭐였는지, 어떤 것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타인을 만날 때 뭘 조심해야 하는지, 잘 고찰해야 봐야 해요. 그래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신을 잘 알지 못한 채로 남편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그 기대는 좌절될 수 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이 조금만 잘해줘도 그 사람에 대해 판타지를 갖고 기대를 하고, 그러나 그 기대는 결코 충족되지 않고, 또 다시 절망하는 일이 반복될 거예요.

선화씨가 지금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뒤 영어를 배우러 다니길 권해요. 그리고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준비를 하시라는 거예요. 그리고 남편에게는 화를 내고 악을 쓰는 게 아니라 정확한 말로 거부 의사를 표하세요. 남편의 문제는 선화씨 탓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혼하지 않고 살 거라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고 봐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의욕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선화씨에겐 힘이 있어요. 그렇게 지독한 공격을 받고도 당신은 살기 위해 한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게 선화씨가 가진 에너지예요. 당신 안에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와 달리 선화씨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해요. 당신은 어머니와 같지 않을 거예요. 선화씨의 에너지를 모아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언어도 차근차근 배우세요. 그럴 때 남편과의 관계도 좀더 균형 있게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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