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 ‘운전대’ 쥐어준 절호의 기회
北은 한미일 동맹 이완과 제재 완화 효과
북미 대화 계기 만드는 게 정권 최대과제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만큼 대중을 매료시키는 것은 드물다. 선수들의 강인한 체력과 현란한 기량, 드라마틱한 플레이, 그리고 승부의 짜릿함은 사람들을 스포츠의 마법 같은 흡인력에 빨려 들게 한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기록에 따라 등수를 결정하는 스포츠의 경쟁적 성격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승부욕을 들끓게 함으로써 선수들과 관중들을 혼연일체의 열광 상태로 몰아넣는다.

스포츠는 문화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규칙의 엄격한 적용은 사람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과 공정의식을 심어주고, 승패를 떠나 서로를 격려하는 선수들의 포용적 태도는 관용과 상호존중의 문화를 강화시킨다. 인종과 계층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스포츠는 사회 전반에 평등의식을 확산시키며, 선수들과 관중들 사이에 형성되는 강력한 일체감은 사회통합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는 또한 스포츠장비 산업은 물론, 의류, 스포츠음료, 헬스 케어, 도박 등 다양한 산업을 파생시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지역 및 국가 간 교류를 촉진시켜 지구적 통합을 가속화시킨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이 많은 국가가 참가하는 대규모 스포츠 행사는 이념과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완화시켜 세계의 화합과 평화에도 기여한다.

이런 큰 영향력 때문에 스포츠는 불가피하게 정치적 함의를 갖게 된다.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뜻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정치인들이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스포츠의 무한한 잠재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들기도 한다. 예컨대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몰입이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여 민주정치의 질을 저하시키는 현상은 전자에 해당되고,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한 예는 후자에 해당된다.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는 평창올림픽도 정치성을 완전히 벗을 수는 없다. 애초부터 평창올림픽은 국가브랜드를 제고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게다가 최근의 상황 변화는 평창올림픽에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덧붙였다. 평창올림픽은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으로 쌓인 국민들의 정치적 피로감을 풀어주고, 잠시나마 작년 내내 지속됐던 전쟁공포를 완화시켜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주도권 다툼에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평창올림픽은 지금껏 미ㆍ일과 보수 세력에 밀려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거의 잡아보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소신껏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북한에게도 한미일 동맹을 균열시키고 국제사회의 제제와 압박을 이완시킬 수 있는 호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미일과 국내 보수 세력에게는 평화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이나마 제재와 압박을 늦춰야 하는 딜레마 상황을 야기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집권세력에게 준 기회는 짧고 위태하다. 문재인 정권이 패럴림픽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대화의 단초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운전대’는 다시 미일로 넘어갈 개연성이 있으며, 평창올림픽 개막 이전의 위기가 재연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은 미일과의 공조를 유지하고 중ㆍ러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북미 간 대화도 성사시켜야 하는 난제 중의 난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정권은 동맹국은 물론 국내의 보수 세력으로부터도 북한에게 핵·미사일 완성의 시간만 벌어준 무능한 정권이라는 비난의 포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평창올림픽이 일시적 위안과 즐거움을 선사한 단순한 스포츠행사로 그칠지 아니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비핵화의 계기를 마련한 평화올림픽으로 승화될지는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역량과 외교력에 달려있다.

만일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당분간 한반도에 머물기를 기원할 뿐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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