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항일군史 편입 놓고 엇갈리는 남북

정규군 창건일로 ‘국군의날’ 변경한 北
선군정치ㆍ김일성 우상화 등 적폐 청산
경색된 북중관계 방증이라는 해석도
南선 거꾸로 광복군 창설일 복원 조짐
지난 8일 열린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열병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전날인 8일 오전. 축제의 장인 한반도에 평화와 전쟁의 기운이 교차했다. 평화의 제전 하루 전인 그날 굳이 평양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벌여야겠다는 북한의 고집 탓이었다.

당일 열병식은 예고대로 진행됐다. 다만 대외용 무력 과시로 보기는 애매했다. 외신ㆍ외빈을 초청하지 않았고 생방송도 포기했다. “내부 경축 행사일 뿐”이라는 행사 전 해명을 철저히 실천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국제사회도 일단 한숨을 돌렸고 아직까지는 올림픽도, 남북관계 개선도 순항 중이다.

축제 분위기를 망치려는 것 아니냐는 원성을 감내해가며 북한이 하필 그날 열병식을 강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찌감치 성대하게 기념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70주년 정규군(조선인민군) 창설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위를 낮춘 게 북한으로서는 큰 양보였는지 모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3일자 신문 1면에서 정규군 창설일인 2월 8일을 '건군절'로 공식 지정한다는 내용의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보도했다. 연합뉴스
北 건군절 복원 이유

지난달 22일 북한은 ‘건군절’ 변경을 선포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2월 8일을 건군절로 지정하고, 기존 건군절인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이름을 바꿔 부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원래 건군절의 복원이다. 1978년에 항일유격대 조직일인 1932년 4월 25일로 바뀌기 전까지는 건군절이 인민군 창설일인 1948년 2월 8일이었다.

재지정 조짐은 ‘김정은호(號)’ 출범 3년째인 2015년부터 보였다. 왜 다시 바꾸려 했을까. 짐작되는 의도는 여러 가지다.

우선 김정은 당 위원장이 선대와의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6일 “집권 초기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에 크게 의존했던 김정은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높아지는 주민 지지도를 바탕으로 선대와의 차별화를 모색해 왔다”고 진단했다. 건군절 복원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당(黨)’ 중심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軍)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했다. ‘선군후당(先軍後黨)’ 통치 이념 하에서 군부 권력이 지나치게 커졌다. 군이 통치하는 나라는 정상 국가가 아니라는 게 김정은 위원장 판단이었다. 2016년 36년 만에 당대회를 열어 당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올해 건군절까지 바꿔 당 창건(1945년)이 군 창건(1948년)을 시간상으로도 앞서도록 만든 게 이런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이었을 공산이 크다.

적폐 청산 작업 일환일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1978년 건군절 변경을 추진한 건 인민군이 항일 혁명 전통을 계승한 군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세습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부친(김일성 주석) 세대인 항일 빨치산을 포섭하고 부친의 항일 활동 부각을 통해 부친을 우상화할 필요도 있었다. 1932년 항일유격대를 조직한 인물이 김일성 주석이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며 군사 강국으로 거듭났고 김일성 세대는 거의 다 퇴장했다. 더 이상 빨치산 항일 혁명 전통에 기댈 필요가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없다.

경색된 북중 관계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유격대는 북한과 중국, 광복 이후 정규군은 북한과 옛 소련 간의 긴밀한 관계를 각각 상징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건군절을 (항일유격대 조직일인) 4월 25일로 옮겼던 때가 중국과의 관계가 한창 강조될 무렵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건군절을 다시 2월로 옮긴 게 소원해진 북중 관계의 방증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9일자 1면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8일 개최된 열병식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1면에 게재했다. 연합뉴스
南 국군의 날은

북한 건군절은 우리로 치면 ‘국군의 날’이다. 건군절 복원으로 군 역사에서 항일운동사(史)를 배제하려는 북한과 달리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는 광복군사를 편입하려는 기류가 뚜렷하다.

국군의 날 정통성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집권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군 역사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관련 논의가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8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광복군 역사를 국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국민주권이 1919년 항일 독립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기반이 됐다”며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발언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다.

현재 국군의 날은 10월 1일로 육ㆍ해ㆍ공 3군 체제 완성(1949년)을 기념한다. 공교롭게도 육군이 38선을 돌파한 날(1950년)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날(1953년)도 이날이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이 근거다. 대한민국이 3ㆍ1운동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는 만큼 광복군 창군일이 국군의 날이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얘기다.

수십년 간 기념해 온 날을 단박에 변경하는 건 쉽지 않다. 16, 17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만 논의가 필요하다면 유지ㆍ변경을 주장하는 양측 모두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도 바뀌는 터무니없는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항일 저항 역사를 지우려는 북과 다시 새기려는 남, 비핵화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북에서 남으로 접근하는 중국, 과거사는 덮고 북과 맞서기 위해 남과 안보동맹을 맺고 싶어하는 일본과 이를 견제하는 중국. 한반도 해빙이 급속한 요즘 항일군 역사를 둘러싼 남북과 중국, 일본의 운명이 공교롭고 얄궂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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