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청년에게 더 불리한 사회보장, 돌이킬 수 없는 세대간 빈부격차

알림

청년에게 더 불리한 사회보장, 돌이킬 수 없는 세대간 빈부격차

입력
2018.02.16 16:00
0 0

장기간 고질적인 청년 실업문제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에서 청년층과 노년층 사이의 세대간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됐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속에서도 유럽 노년층의 소득과 자산은 조금씩이나마 증가한 반면 일자리도 없고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전혀 받을 수 없는 청년층의 소득은 지난 10년간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보다 늦게 청년 고용난이 시작된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후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선제적인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 주문이다.

16일 IMF에 따르면 장 자크 할라에르 유럽 분야 선임이코노미스트 등 IMF 연구팀은 최근 ‘유럽연합(EU) 내 세대간 불평등 및 빈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실업문제가 장기간에 걸쳐 각 세대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와 유럽 재정위기(2011년)를 거치면서도 유럽의 전체 소득 불평등 정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의 강력한 사회보장정책과 소득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덕분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소득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상위 1% 소득만 늘면서 중산층은 점점 몰락하고 있는 미국과는 사정이 다른 모습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세대별 빈곤율 <자료: 유럽연합 통계청,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 국가들의 세대별 빈곤율 <자료: 유럽연합 통계청, 국제통화기금>

점점 더 가난해지는 유럽청년들

그러나 세대별로 각각 떼어놓고 보면 전체 평균 수치를 볼 때와는 사정이 매우 달라진다. 유럽의 전후(戰後) 번영을 누려 온 고령 세대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 세대 사이의 격차가 과거보다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세대에 따른 상대적 빈곤 수준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유럽의 65세 이상 고령층의 소득은 10%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15~24세 청년층 소득은 오히려 후퇴했다. 지난 10년 동안 노년층은 조금씩이나마 경제 사정이 나아진 데 비해 청년층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나빠진 셈이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청년실업으로 지목했다. EU 통계청(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07년 EU 지역 청년 실업률은 15.6%였지만 2014년 23.8%까지 급등한 뒤 2016년(20.9%)에도 여전히 20%를 웃도는 등 장기간 높은 청년 실업률이 이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가 극에 달했던 2014년에는 스페인(53.2%) 그리스(52.4%) 이탈리아(42.7%) 등 주요 남유럽 국가 청년의 절반이 실업자였다.

이렇게 청년 실업이 고질화하면서 EU의 청년 중 4명 중 1명이 빈곤층(중위소득의 60% 이하)으로 전락했다. IMF 연구진은 “실업의 저주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청년들은 점점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구한 일자리는 저임금이 대부분이어서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유럽의 청년층은 전체 세대 중에서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라며 “이런 경우 금융위기가 재발했을 때 청년층이 가장 취약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세대별 실업률 <자료: 유럽연합통계청,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 국가들의 세대별 실업률 <자료: 유럽연합통계청, 국제통화기금>

고령층에 집중된 사회보장제도

EU 국가들의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훌륭하긴 하지만, 이 혜택이 주로 고령층에게만 쏠렸다는 점도 청년층 빈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요소다. 연구팀은 “고령층의 경우 시장소득(국가에 세금을 내기 전 소득)만으로 본다면 소득격차가 크지만 국가의 재분배 기능 덕분에 실제로는 이 격차가 매우 줄어든다”고 진단했다. 국가가 저소득 고령층에게 각종 연금이나 보조금 등을 지급하면서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특히 EU 국가들이 고령층의 연금을 물가에 연동해서 인상한 조치는 금융위기ㆍ재정위기 기간 중 고령층의 구매력을 전보다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그러나 유럽의 생산가능계층, 특히 청년들은 경제위기와 실업대란의 와중에도 이런 사회보장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대부분 EU 국가들은 재정위기 탓에 청년 관련 지출을 줄이는 조치를 실시했고, 영국(2013년)과 프랑스(2014ㆍ2015년)는 가족수당도 감소시켰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정부가 ▦교육 ▦가족 ▦양육 관련 지출을 줄이게 되면 청년층이 이 타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실업자가 받는 실업수당도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설계됐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일정한 기여도(가입기간)가 필요한데, 첫 직장도 잡기 어려운 청년층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또 고령자들이 받는 연금이 물가 인상률에 연동된 것과 달리, 청년층과 장년층이 수혜를 받는 각종 국가보조금은 물가에 연동되지 않아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가치가 줄어드는 문제도 생겼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 주는 시사점

EU가 지난 10년간 경험한 청년실업 문제와 정책적 실패는 한국도 맞게 될 가능성이 큰 문제다. 한국 역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줄면서 수년간 청년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또한 기초연금(65세 이상 고령층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연금)의 지급액과 범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등 고령층에 대한 사회보장정책은 늘고 있지만, 청년들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원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실시되는 청년수당은 포퓰리즘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IMF 연구팀은 “실업문제와 청년층 빈곤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청년들을 노동시장에 안착시키는 문제가 지금 정책결정자들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 과정에서 청년층의 빈곤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지금처럼 고령자 중심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이어간다면 한국 역시 EU 사례처럼 청년 세대 전체의 빈곤화를 맞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