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문구에 '핑크색' 의자, 바닥에는 핑크 카펫까지…. 지하철 내 '임신부 배려석'은 시민들의 배려를 독려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지난해 임신부 10명 중 4명은 아직도 '배려를 받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과연 임신부 배려문화를 정착시킬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걸까요? 최근 대전 지하철은 '특별한' 임신부 배려 캠페인을 시행 중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일보가 대전에서 일어난 변화를 카드뉴스로 정리했습니다.

고가혜 인턴기자

“저요? 지금 저 보고 비키라는 거에요?”

“어우 씨, xx”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했더니 큰 소리로 욕을 하고 내리자마자 쓰레기통을 발로 뻥 차는데 한동안 진정이 안 됐어요. 순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렵더라고요.”

지난해 9월, 한 임신한 여성이 서울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중 임신부 배려석 양보를 부탁했다가 겪은 일입니다.

2011년 대전 지하철에서 처음 등장한 임신부 배려석은 2013년 서울 지하철에도 도입됐습니다.

장시간 대중교통에서 서 있기 힘든 임신부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배려보다는 갈등이 먼저 싹 텄습니다.

“진짜 임신한 거 맞아?” 2016년,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27주차 임신부가 노인에게 복부를 가격 당했습니다.

노인은 한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도 ‘임신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임신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올리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오메가패치’라는 SNS 계정이 생겨났고,

임신하지 않았으면서 배려석에 앉은 사람을 신고하자는 온라인 상 움직임에, 한 달간 서울교통공사에만 5,600건이 넘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배려’라는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핑크 좌석, 그러나 갈등만 고조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평화롭게 푸는 방법은 없을까요?

최근 새로운 캠페인을 도입해 화제가 된 대전 지하철에 가 봤습니다.

지난 1월 24일, 대전 지하철 1호선의 한 객실,

희끗희끗한 머리, 지팡이를 손에 든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를 부축하는 할머니 두 분이 지하철에 탑니다

노약자석은 이미 만석, 비어있는 자리는 분홍색 띠로 둘러싸인 임신부 배려석 뿐,

일단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눈치가 보이는지 계속 몸을 들썩입니다.

“형님~ 여기로 오셔! 거기는 영 앉아 있기 불편해. 아이 가진 사람이 앉을 수 있지. 우리는 앉으면 안 돼.”

결국 그들은 다른 자리가 나자마자 자리를 옮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빈 자리에 여전히 뭔가가 놓여 있네요.

임신부 배려석을 항상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곰 인형’이었습니다.

아하! 아까 할머니의 “불편하다”는 말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인형을 깔고 앉아 몸이 불편하다는 뜻이었군요.

그런데 이 인형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지난해 11월,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내 모든 임신부 좌석에 곰 인형을 설치했습니다.

“임신부 좌석입니다. 나를 안고 앉아주세요” 문구가 새겨진 곰 인형을 자리에 앉혀놓고 시민들이 자리를 비워두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4시간 동안 임신부 배려석을 관찰한 결과 임신부가 아니면서 인형을 뭉개고 앉은 사람은 단 두 명 뿐이었습니다.

“나도 노인이라 몸이 안 좋지만 임신부 좌석은 비어 있어도 앉지 않아요. 그 자리는 노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잖아요. 비워두는 게 당연하죠. ” – 대전 시민 권만순(70)

곰 인형 하나가 바꾼 의미 있는 변화. 바로 ‘넛지(Nudge) 효과’ 때문입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으로 신고, 강압 등에 못 이겨 행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긍정적인 행동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죠.

그 의도대로 시민들은 곰 인형 캠페인이 양보하는 쪽과 양보 받는 쪽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인형이 생기고 나서는 확실히 좀 더 자리에 앉는 것이 꺼려졌어요. 그러면서도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으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 – 대전 시민 한혜림(21)

임신부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자리를 양보 받은 임신부들은 맘카페 등에 인증샷을 올리며 인형이 만들어낸 변화에 놀라고 있습니다.

민원보다 확실한 곰 인형의 효과, 2016년 이 아이디어를 처음 시도한 공공소통연구소 LOUD 이종혁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금지’의 포화상태입니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호소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죠.

금지, 명령 보다는 ‘공감과 긍정’을 일으키는 넛지커뮤니케이션으로 우리 사회를 스스로 변화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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