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91)]말레이 사바주(州)를 즐기는 4가지 방법

오션뷰가 찬란한 리조트에 머물지 않았다. 우리의 사치는 브루나이 여행을 위한 렌터카의 수명이 이틀 정도 남은 것이 전부였다. 쪽박 찬 배낭여행자로서 코타키나발루를 이리저리 들쑤시며 다녔다. 때론 숨가쁘고, 때론 더없이 황홀했다.

*이하 코타키나발루는 현지인이 부르듯 ‘KK(케이케이)’로 씀.
1. 현지인의 생명력이 팔딱거리는 시장(市場) 퍼레이드
“자자, 가요!” 허리를 휙휙 돌리며 피하는 민첩함이 필수인 에너지 덩어리 시장.
바닷가 앞 시장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독특한 패셔니스타라면 도전해볼 만.
이날 시장의 포토제닉. 55kg 헤비급 참치와 참외 배의 컬래버레이션. 시장은 ‘사진 찍히기’를 즐긴다.
일요일의 길거리 시장. 빈티지 소품 옆 구두약, 주스 옆 화분, 건어물 옆 옷 등 무정형, 무규칙이다.

언제나 현지의 거울이라 할 수 있는 시장으로 첫 발걸음을 뗐다. KK는 사실상 대형 쇼핑몰이 주름 잡는다. 에메랄드 빛 바다 대신 시내는 큰 간판을 괴물처럼 단 사각 고층 빌딩으로 꽉꽉 차 있다.

쇼핑몰과 쇼핑몰 사이, 꼬리에 꼬리를 문 시장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위즈마 메르데카 쇼핑몰 근처 회전교차로에서부터 바다를 낀 시장이 도미노처럼 연결된다. 수산시장을 지나면 야채와 건어물 시장, 과한 프린트 무늬 옷을 내건 공산품 시장이 이어진다. 현지인의 빠른 심장 박동수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현지인과의 이런저런 마찰로 반달 웃음을 짓게 한다. “난 여기서 24시간 지내. 자고 팔고 자고 팔고, 여기가 내 삶의 터전이지!” 그 곁엔 잔디에 자리를 편 해물이 보기 좋게 선탠 중이다. 일요일마다 반대편 가야(Jln Gaya) 거리에서 노점상도 펼쳐지니, 눈요기해 볼 것. 흥정과 고함 속에서 관광객의 취향을 저격할 아이템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2.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물고기…마무틱-사피 호핑투어

“사람이 너무 많아. 거긴 별로야.” 철썩 같이 믿던 호스텔 주인의 직언이었다. KK의 서쪽, 보트로 시내에서 엎어지면 닿을 5개 섬을 싸잡아 무시했다. 마누칸과 가야, 사피, 마무틱 등의 섬과 주변을 지칭하는 49km2 지대의 공식 명칭은 툰쿠 압둘 라흐만 국립공원. 대신 그가 추천하는 만타나니 섬 투어를 단행하기엔 가격(인당 250RM, 6만9,000원) 대비 열정이 없었다. 주춤거렸다. 바다 저편으로 시선을 뺐다. 날마다 교통대란인 이곳보다는 나으리라는, 비린내 섞인 희망의 바람이 몰려 왔다. 콧바람 쐬는 소풍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보트를 중개하는 여행사 카운터
방문할 섬을 체크한 티켓. 거듭 말하건대, 티켓에 적힌 픽업 시간은 의미가 없다.
사피에서의 첫 컷. 이 평화로운 바다에서 식인고기 뺨치는 트로피컬 물고기가 덤빈다.
마무틱 선착장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이 다이빙 숍이 보일 때 자리를 펼 것. 무인도에 뚝 떨어진 듯한 이상기류를 탄다.
더불어 국립공원 내 생존하는 대부분의 물고기가 누비는 이곳, 스노클링의 명당이다.

제셀톤포인트(Jesselton Point)에 늘어선 보트 중개업소의 카운터는 호객의 기운을 잃은 듯했다. 5개의 섬 중 마무틱과 사피를 골랐다. 마무틱은 ‘가장’ 작았고, 사피는 스노클링에 ‘가장’ 적절하다는 정보에 기댔다. 한편으로 맞고, 한편으론 틀렸다. 마무틱에서도 인파가 드문 해변은 가장 넓어 보였고, 다이빙 숍 맞은편으로 스노클링 명당이 있었다. 사피는 인파가 많아 자유롭게 스노클링을 즐기기엔 오히려 공간이 비좁았다.

호핑투어 첫 행선지 사피 섬은 기념엽서 속 풍경이었다. 섬에 가까이 갈수록 하얀 백사장을 머금은 바닷물이 반짝인다. 트로피컬 물고기가 무서우리만치 꼬리를 흔들어댔다. 충격이라면 바닷속 산호초는 모두 말라 비틀어진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그 무덤 속에서 사람이 주는 먹잇감에 달려드는 물고기의 공격성은 식인고기 떼 수준이다. 손을 잡아 먹을 기세였다. 더 큰 충격이라면 호핑투어의 극단적인 자율 시스템. 여러 여행자를 중구난방으로 태운 보트는 두서없이 이 섬 저 섬으로 날아간다. 본인이 내린 섬에서 다음 섬으로 언제 갈는지, 시내로 돌아가는 보트는 언제쯤 탈 수 있는지, 승객 스스로 보트 기사와 시간 확답을 받아놓아야 한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는 정신이 깊이 잠재하는구나. 2시간 후에 떠난다고 했건만…. 마무틱에서 우리만 떼어놓고 떠나려는 보트를 똑똑히 보았다. 까딱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될 판이다.

*호핑투어 누리는 법 : 제셀톤포인트의 우측 보트 카운터에서 가고 싶은 섬을 말한다. 흥정 초보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업소별 가격 편차가 크진 않는 편. 핵심은 보트 기사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언제 자신을 데리러 올 지 확답을 받는 거다. 호핑투어(2개 섬)/스노클링 장비(1대) 인당 가격은 약 48RM(1만3,000원). 터미널 비용 포함 가격이다.

3. KK를 좀 더 알고 싶으면 사바박물관과 마리마리 컬처빌리지
역사, 자연, 문화 등 분야별 분류를 둔 인터랙티브형 사바박물관. KK가 주도인 사바주의 존재감이 이글거린다.
큰 둘레길과 숲길로 가지치기한 박물관. 갤러리가 되고, 정글이 되기도 한다.

한 여행지의 뿌리를 알만한 장소를 가면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하는 기분에 휩싸인다. ‘내가 이런데 말이지.’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사바박물관은 자연친화형 멀티플렉스다. 역사와 문화, 이슬람 종교, 자연 등 사바주(州)를 정의하는 전시관과 산행에 가까운 숲, 그리고 부족 마을의 실제 모형이 길을 따라 뒤엉켜 있다. 에어컨 성능이 좋은 실내와 갈증을 일으키는 무더운 실외를 들숨과 날숨으로 반나절을 보냈다.

집부터 숟가락까지, 대나무의 A to Z을 활용했던 둔순족. 첫 방문지에서부터 전통술을 권했다. 좋은 건가.
정글 속 각 부족을 탐방하기 전 이해를 돕는 입구의 푯말.
적은 무조건 머리를 ‘따버리는’ 헤드 헌터, 무구트족. 뭐든 과감하고 과격하다. 축제 기간엔 이 대나무 트램펄린(lansaran)을 이용해 천장으로 창공!

이곳에서 약 19km 떨어진 부족 마을로 깊이 들어가기도 했다. 시내를 뚫고 우거진 숲 속에 갇힌 마리마리 컬처빌리지다. 사바박물관에 버려지듯 파리만 날리던 부족 마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가이드는 10명 이상의 그룹을 끌고 다니며 사바주의 5개 부족을 탐험한다. 땅의 가르침을 받는 온순한 농부였던 둔순과 룬구스, 사냥과 낚시에 일가견이 있던 룬다예, 집시였던 바자우, 그리고 공포의 전사 부족 무루트가 그 주인공. 당시 부족별 삶의 방식과 정신을 엿보고 듣고 맛보는 ‘만렙’형 여행이다. 마을을 하나씩 ‘클리어’하는데, 조촐한 즐길거리를 사부작사부작 넣었다. 쌀로 빚은 전통술도 마시고, 삶은 타피오카도 맛보고, 대나무 트램펄린에서 뛰어도 보고, 담배도 말아 피워본다. 안타깝게도 10대로 보이는 청춘이 부족 주민을 재연하기에, 그 시절로 심취하기엔 공백이 큰 편. 아이들과 함께라면 야생의 삶을 헤쳐나갔던 각 부족의 삶을 학습하기에 좋겠다. 한 지점에서 설명을 마친 가이드는 이동할 때마다 악센트를 올리며 말한다. “마리마리!” 어서 오란 말이다.

*마리마리 컬처빌리지 즐기는 법 : 매일 3회 시간제(오전 10시, 오후 2시, 6시) 패키지 투어다. 직접 방문하거나 숙소 혹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거나. 5개 마을을 관통한 뒤 부족 공연 감상으로 마무리하는, 뷔페로 배를 채우는 반나절 코스다. 직접 방문하면 98RM(2만7,000원)이다.

4.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샹그릴라 라사리아 리조트의 낙조
때론 이 세상에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 생각한 색과 양감의 레이어 쇼도 펼쳐진다.

KK의 바다는 사실 물놀이용보다 관상용에 더 가깝다. 마무틱과 사피 섬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떠나면 리조트 앞 탁한 바다에서 발만 찰랑거리는 자신을 만나고야 말 테니. 현지인 사이에서 KK 낙조의 절정은 샹그릴라 라사리아 리조트로 의견이 모인다. 시내에서 약 38km, 멀리도 갔다. 동양적인 기운을 불어넣은 리조트 앞 낙조는 대략 오후 5시 30분경부터. 밍밍한 팜트리에 노란 명암을 드리우더니 하늘과 바다가 검붉은 변주를 넣는다. 수평선에 맞닿은 회색 구름은 모자를 쓴 사람 같기도, 용솟음한 화산 같기도 하다. 폐가 짜릿해진다. 이크! 온천처럼 바다가 뜨거워진 게 아닐까 발도 담가 보았다. 피지, 산토리니와 더불어 3대 낙조라는 명성에는 일말의 의문을 품었으나 그 낙조는 충분히 오늘의 위로이자 내일의 희망이리.

꼬르륵 배에서 신호가 왔다. KK에서는 브루나이처럼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 그 숨막히던 대낮의 열기가 야밤에는 끝없는 조명으로 대치된다. 시내로 돌아와 밤을 잊은 억겁의 불빛, 그 어느 한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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