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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남북 정상회담과 신뢰 문제

입력
2018.02.14 19: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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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측 고위 당국자들과 6차례 오ㆍ만찬 회동을 가졌다. 그때마다 북한 측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대통령과 의견을 교환하고 자주 상봉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마련했으니,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며 문 대통령 방북을 거듭 타진했다. 북한 대표단의 일관된 대남 메시지는 조기 정상회담 개최였다.

그렇다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왜 남북 정상회담에 목을 맬까. 그가 핵 보유국 선언은 했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핵 보유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핵 보유를 인정받으며 대미ㆍ대남 관계 정상화를 꾀하려 하겠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임을 이번에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로선 당장 올해 직면한 경제건설과 주민생활 향상, 이를 통해 정권 창건 70돌을 성대히 보내기 위해서라도 핵 정책의 전술적 수정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핵 보유 정책을 수정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주요 행사 때마다 핵 보유가 항구적 전략노선이라고 선언해 왔다. 비핵화를 의제로 삼는 대화는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지 않은 채 핵 정책을 변경하면 권위가 추락한다. 핵 정책 수정을 위해서는 핵 보유의 조건과 환경 변화가 필요하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적 환경 조성이 그 조건인지 모른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강조하는 배경도 이런 조건이나 환경과 무관치 않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이런 조건이 성숙되길 바라고 있는 것같다. 대남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핵 개발 정책 변화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대표단의 방남 중에 비핵화 문제도 어느 정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통일부가 밝혔듯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차가 여전하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도 가시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아직은 핵 보유와 남북관계 개선은 별개 문제라는 북한의 인식이 읽혀지기도 한다. 다만 김여정이 “문 대통령께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많은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돌파구가 마련될 것처럼 시사한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를 간파한 듯 통일부는 “(북한 측이) 필요할 경우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들을 고려하면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여건으로 인식하는 것같다. ‘선 정상회담, 후 과감한 조치’ 구도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와 국제사회는 아직 북한을 믿지 못한다.

북한 핵 개발도 어쩌면 ‘불신’의 산물일지 모른다. 북한은 누구도 믿지 못해 대화 중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영구적으로 폐기시키는 핵심 수단은 ‘신뢰’임을 시사한다. 원자폭탄 연구를 최초로 시도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평화는 힘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는 오직 서로를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는 경구를 남겼다. 북한이 수십 년에 걸쳐 많은 비용과 희생을 통해 개발해 온 핵무기를 단시일 내에 양보하거나 포기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은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견지하면서 북한과의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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