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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상록의 잎새와 함께 진홍색 꽃을 피우는 게 큰 매력이다. 붉은 꽃잎과 샛노란 수술, 윤기 나는 잎사귀가 조화를 이룬 모습이 가까이서 볼수록 아름답다.

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사랑을 받았다. 우리 민족도 다르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뜰에 떨어진 꽃잎을 쓸지 마라”고 할 정도로 꽃의 일생을 사랑했다. 고려 때의 문호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시작비명화(詩昨非名花) 필하무연사(筆下無嬿詞)“라고 했다. ”시를 지을 때 좋은 꽃을 보지 못하면, 붓을 들어도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인품(人品)이 있듯 꽃에는 화품(花品)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정원에 무슨 꽃을 심었는지를 보고 그 주인의 인품을 가늠했다. 동백꽃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특히 귀하게 여겨졌다. 귀한 손님을 맞을 때는 동백꽃으로 꽃꽂이를 해놓고 동백차를 냈다. 일반적으로 동백꽃은 장미와 함께 정열적 사랑을 상징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선비의 청빈함과 기개의 표상으로 여겼다. 꽃나무 이름에 겨울 ‘동(冬)’자를 넣은 것도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와 마찬가지로 겨울 꽃이 가지는 청렴과 절조의 이미지를 높이 산 때문이다.

전통 민간 신앙에서 동백은 생명력과 다산(多産)의 상징이었다. 도교에서 봄과 가을을 500번씩 맞는다고 보았던 게 바로 ‘대춘(大椿)’이었고, 장자(莊子)는 8,000년의 ‘대춘지수(大椿之壽)’를 언급했다. 혼례식장에 대나무와 함께 동백나무를 항아리에 꽂아 놓는 것은 동백이 열매가 많이 열려 다자다남(多子多男)을 상징한 때문이다. 동백 가지로 여자의 볼기를 치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동백나무 망치를 갖고 다니면 역병(疫病)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신(俗信)도 있었다. 축귀(逐鬼) 의식에 복숭아 가지와 함께 동백 가지를 쓰기도 했고, 정초에 풍년과 장수를 기원하는 당산제(堂山祭)에는 동백나무 둘레에 금줄을 치고 오색천을 매달았다.

그런데 동백이 좋은 것만 상징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꽃과 달리 동백은 꽃이 질 때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붉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내린다. 그런 모습에서 처연함을 느낀 때문이지,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을 ‘춘사(椿事)’라고 불렀다. 그런 연유로 제주도에서는 집안에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해 동백꽃을 심지 않는다. 지금도 병문안을 갈 때는 동백꽃을 들고 가지 않는 것도 그런 관념과 닿아 있다. 불교에서 무상(無常)의 상징으로 여겨 사찰 주변에 흔히 심고, 카톨릭에서 순교자에 비유하기도 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동백나무는 해풍과 염분에도 잘 견디며 비옥한 곳을 좋아해 남쪽 섬 지방과 해안에 널리 분포하지만 해류의 영향 때문에 대청도가 최북단이다. 제주도 한라산에는 해발 1,100m까지 자생 동백꽃이 있다. 세계적으로 600여 종이나 되고, 국내에도 거문도에서 흰동백, 분홍동백, 황금동백 등 자연변종이 발견됐듯, 다양한 종이 자생한다. 동백나무는 ‘백안작(白眼雀)’이라고 도 불리는 동박새가 꽃가루를 옮기는 조매화(鳥媒花)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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