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애니북스토리] 햇빛에 뒹구는 고양이만도 못한

알림

[애니북스토리] 햇빛에 뒹구는 고양이만도 못한

입력
2018.02.13 14:00
0 0
길 위에서 혹한을 견디기 어려워 실내로 몸을 피한 생명에 조금의 연민도 없음은 놀라웠다. 픽사베이
길 위에서 혹한을 견디기 어려워 실내로 몸을 피한 생명에 조금의 연민도 없음은 놀라웠다. 픽사베이

가끔 귀를 의심할 때가 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꽤 오래 전, 어느 겨울 미팅이 있어서 한 디자인 사무실을 찾았는데 대뜸 1층 문을 제대로 닫고 올라왔냐고 묻는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길고양이 때문이란다.

“아, 추우니까 아이들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두시나 봐요. 제가 모르고 닫고 왔는데.”

“아니요. 추우니까 자꾸 고양이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 닫아야 해서요.”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추우니 들어온 걸 텐데요...”라고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길고양이를 잘 아는 것도 아니어서 좋은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도 없었고, 처음 본 사람의 문제에 참견할 의욕도 없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혹한을 견디기 어려워 실내로 몸을 피한 생명에 조금의 연민도 없음은 놀라웠다.

손톱만큼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바로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 픽사베이
손톱만큼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바로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 픽사베이

올 겨울에 그날의 데자뷰를 경험했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혹한이 이어지던 지난달, 어두워지기 전에 동네 고양이들 저녁을 먹이려고 찾아 다니고 있는데 멀리 아이들이 보였다. 우리 동네 길고양이 홍보대사인 갑수가 역시나 사람들에게 몸을 쓱쓱 비비며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때 갑수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자리를 뜨면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어, 얘, 어떡해. 따라와.”

“에이씨, 떼버려. 걔는 조금 예뻐하면 건물 안까지 따라와서 짜증나.”

이렇게 야박하게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오가며 가끔 먹을 것도 주고 갑수를 예뻐하던 사람이다. 그들에게 길고양이는 길을 가다가 잠시 들어가서 한 판 하고 나오는 오락실 게임 같은 건가? 잠시 즐거웠으면 그만인. 손톱만큼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바로 안면을 바꾸는. 갑자기 태도를 바꾼 사람들에 당황한 채 홀로 남겨진 아이를 “괜찮아, 괜찮아.” 다독였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인간이란 뭘까.

과연 인간만이 동물부터 인공지능까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한가. 픽사베이
과연 인간만이 동물부터 인공지능까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한가. 픽사베이

얼마 전 TV에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패널들의 ‘인간부심’이 대단한 것을 보고 놀랐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판단, 인간만이 가진 감정이 반드시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과연 인간만이 동물부터 인공지능까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한가.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호모 라피엔스는 ‘약탈하는 자’라는 뜻이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가정들을 흔든다. 우리는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의식이라고 믿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많은 의사 결정을 의식할 새도 없이 내린다. 인간이 가장 고결한 생명체라는 주장은 다른 생명체들이 그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독일의 사상가 리히덴베르크의 말에 키득키득거리며 웃었다.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는데 햇빛에서 뒹굴 거리는 고양이에게서 해답을 얻었다. 픽사베이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는데 햇빛에서 뒹굴 거리는 고양이에게서 해답을 얻었다. 픽사베이

인간이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여러 본능이 서로 상충한다. 안전을 갈구하지만 쉽게 지루해하고, 평화를 사랑하지만 폭력을 열망하고, 생각하기를 원하지만 생각이 가져오는 불안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정말 특이한 존재이다. 또한 동물과 달리 더 치졸하고 비열하게 삶에 집착하기도 한다. 스페인 작가 베르나르도 소아레스는 인간과 동물의 삶이 다른 점을 아무래도 찾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이렇게 썼다.

‘고양이는 햇빛에서 뒹굴 거리고 나서 잠을 자러 간다. 사람은 (그 삶이 얼마나 복잡하든) 삶에서 뒹굴 거리고 나서 잠을 자러 간다. 둘 다, 본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는데 햇빛에서 뒹굴 거리는 고양이에게서 해답을 얻었다. 인간의 못남을 자꾸 확인하게 되는 올해의 추운 겨울이 이제 그만 가면 좋겠다.

참고도서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이후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