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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의 고장’ 순창, 발효미생물 왕국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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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의 고장’ 순창, 발효미생물 왕국 변신

입력
2018.02.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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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 연구원들

방방곡곡 돌며 유용균주 찾아내

발효커피 ‘가비’ 전국 10여 곳 판매

토마토고추장 소스 떡볶이용 인기

전북 순창군 강천산 입구의 카페에는 ‘발효커피(가비)’라는 독특한 메뉴가 있다. 가비를 맛 본 고객들은 “순하면서 부드럽고 향이 좋다”며 “동남아산 르왁커피가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르왁은 서울 강남에서 1잔에 2만5,000원씩 팔린다는 최고급 커피의 대명사다.

순창군에서 개발된 가비는 메주를 띄우는 지푸라기에서 추출한 미생물인 고초균과 유산균으로 커피(원두)를 발효시켜 만들었다.

순창군은 토마토에 함유된 기능성 성분과 면역, 비만 억제 등 효과가 있는 미생물을 활용해 신세대용 고추장소스도 개발했다. 이 토마토고추장 소스는 전립선 질환 예방에 좋은 라이코펜이 풍부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관능(맛)테스트에서 일반 고추장 소스를 제칠 정도로 맛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 순창군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의 정도연(왼쪽에서 세 번째) 원장과 연구원들이 토종 미생물을 활용한 커피, 소스, 청국장, 유산균 등 다양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순창군 제공
전북 순창군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의 정도연(왼쪽에서 세 번째) 원장과 연구원들이 토종 미생물을 활용한 커피, 소스, 청국장, 유산균 등 다양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순창군 제공

‘고추장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순창군이 발효미생물 왕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동안 다져온 고추장, 된장 등 장류산업을 토대로 몸에 좋은 유용미생물을 100년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통산업의 고장에서 21세기 첨단 바이오 메카로 발돋움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순창 (재)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이 있다. 2011년에 설립된 이 진흥원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토종 발효식품에서 건강ㆍ친환경 미생물을 채취해 미래의 생명자원으로 키우는 전진기지다.

정도연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장은 “막걸리를 빚을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균주(누룩)의 소유권이 일본으로 넘어가 매년 200억∼300억원의 사용료(로열티)를 물고 있다”며 “향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산업용균주를 30만종 확보해 미래생명 자원의 보고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흥원은 2011년 3월에 설립, 석ㆍ박사급 연구원 7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30명으로 늘었다. 한국형 토종균주를 찾아 연구원들은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다. 전통시장과 맛집, 종가집 등을 찾아가 고추장ㆍ메주ㆍ젓갈 막걸리 등에서 유용균주를 찾아낸다.

토종 미생물 균주를 찾는 작업은 백사장에서 반지를 찾는 것처럼 힘들다. 보통 1g당 1억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이 중 산업용균주로 선택되는 것은 500여종에 불과하다. 하나의 미생물 균주를 발효식품에서 채취해 배양하고 독성유무를 확인한 뒤 기능성을 평가해 산업용균주로 확정하기까지 1년의 시간과 땀방울을 쏟아야 한다.

황숙주(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북 순창군수가 직원들과 함께 토종 미생물을 활용한 청국장, 고추장토마토 소스 등 다양한 제품을 살펴 보고 있다. 순창군 제공
황숙주(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북 순창군수가 직원들과 함께 토종 미생물을 활용한 청국장, 고추장토마토 소스 등 다양한 제품을 살펴 보고 있다. 순창군 제공

진흥원은 지난 6년간 4만여종의 유용균주를 채취했다. 유용균주는 기능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연구용으로 쓰인다. 이들 중 사업성이 높아 높아 기업체 등에서 구매해 가는 산업용 균주는 3,000여종으로 분류된다. 산업용균주는 1주에 1억원에 판매되기도 한다.

순창군의 발효미생물 균주를 활용한 사업은 성과가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고추장의 토종 균주인 고초균과 유산균을 이용한 발효커피가 대표적이다. 가비는 카페인 성분은 20% 줄어들고,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성분 함량이 높다. 폴리페놀은 항암ㆍ비만ㆍ치매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 대전 등 10여 곳의 커피숍에서 시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토마토 고추장 소스는 떡볶이용으로 인기다. 이달 초 진행한 한 홈쇼핑에서 특판행사에서 준비물량이 70~80%가 소진되는 등 관심을 모았다. 국내 최대의 떡볶이전문업체는 토마토 발효 소스를 매달 140㎏씩 구매키로 계약을 맺었다. 학교 급식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순창 고추장 특유의 맛을 내는 고초균으로 만든 메주는 연간 매출이 30억원이나 될 정도로 잘 나간다.

황숙주 순창군수는 “한국형 발효미생물 메카가 조성되면 1,000억여원의 신규시장 창출, 600여명의 직간접 고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발효소스 산업과 건강장수 생물은행, 한국인의 장 건강을 책임지는 대변 등을 추진해 한국의 바이오산업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수학 기자 sh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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