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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천의 한 병원 호스피스에 입원 중인 재중동포 말기 환자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를 쓰고도 전산 입력에 문제가 생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법은 외국인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국내 병원에서 존엄사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지만, 계획서를 입력하는 정부 전산시스템에는 국내 주민등록번호만 입력이 가능하고 외국인등록번호는 입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문의하자 단순 실수이며, 조만간 개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허점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법 시행 전 시범사업 과정에서 충분히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사소한 문제가 대다수다. 국내 최대 대학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연명의료 전산시스템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건 대표적 사례다. 일선 병원들은 환자로부터 받은 연명의료계획서 서류나 이행 결과 등을 정부 전산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데, 전산입력 절차 등이 너무 까다롭고 병원 전산시스템과 연동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컴퓨터 대신 우편으로 관련 서류를 일일이 접수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인천성모병원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전산시스템에 제대로 업로드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법 시행 전 3개월 간 실시됐던 시범사업 기간 동안 일선 병원들에 전산시스템을 써보게만 했어도 미리 발견하고 고칠 시간이 있었던 문제다. 하지만 병원들은 법 시행 당일(4일)에야 전산시스템을 이용해볼 수 있었다.

시범사업(지난해 10월~올해 1월)도 시행을 앞두고 너무 촉박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호스피스 환자의 연명의료 유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심폐소생거부(DNR) 동의서를 존속시켜야 할지 말지 등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병원들의 참여율이 고작 2%대에 불과한 것도 준비 부족의 한 단면이다.

법이 제정된 게 2016년 2월이니 벌써 2년. 충분한 준비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의 복지부동에 우리 사회가 어렵게 합의를 도출한 존엄사법의 가치가 흐려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성택 정책사회부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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