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 이끈 박영립 인권변호인단장
법조언론인클럽 ‘올해의 법조인상’
“단순 소송 아닌 시민ㆍ치유운동”
소송 시작 뒤 사망자 年 40→7명
소록도를 방문해 한센인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는 박영립 변호사. 박영립 변호사 제공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사랑의 꿈은 깨어지고/여기 나의 25세 젊음을/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중략).”

전남 고흥군 소록도 한센인 마을에서 단종수술(강제 정관수술)을 받은 이동의 시 ‘단종대’. 2004년 처음 소록도 수술대 위에 걸린 저 시를 읽었다는 화우 공익재단 이사장 박영립(65) 변호사는 본보와 인터뷰한 7일 삼성동 사무실에서 단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이 시를 읊어 갔다.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수술대 앞에서 박 이사장이 느낀 참혹함은 10여년에 걸친 한센인 인권 투쟁으로 이어졌다. 박 이사장이 단장을 맡은 한센인권변호인단은 일본과 한국 정부로부터 한센인 피해 배상을 이끌어 낸 공로로 지난달 30일 사단법인 법조언론인클럽 ‘올해의 법조인상’을 수상했다.

한센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2004년 5월 일본인 변호사 두 명이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이던 박 이사장을 찾아오면서다. 그들은 일본 내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을 받아 낸 변호사들이었다. 같은 피해를 당한 한국 한센인들까지 도우려 했지만 일본인으로서 피해자들과 신뢰를 쌓을 수 없어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던 한센인 문제를 일본 변호사를 통해 알았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회고했다.

2004년 처음 일본 정부에 낸 피해배상청구 소송은 이듬해 패소했다. ‘한센인 강제격리는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점을 인정해 일본 한센인 피해자들 편을 들어줬던 법을, 해외 요양소엔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공식문서가 없어 피해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 60여명으로 시작해 12명으로 줄어든 변호인단은 주말을 할애해 한센인 피해자들을 만나 진술을 듣고 피해 증거를 모았다.

결국 지난해 2월까지 피해자 총 590명이 일본 정부에서 1인당 1억원을 배상받았다. 또 광복 이후 한센인들에게 단종ㆍ낙태수술을 강요한 한국 정부로부터 피해자 538명에게 1인당 3,000만~4,000만원씩 배상을 받아 냈다.

한센인권변호인단 활동은 “단순한 소송이 아니라 시민운동이자 치유운동이었다”는 게 박 이사장 설명이다. 변호인들은 전국에 퍼진 90여개 한센인 정착촌을 직접 찾아 피해자들 손을 잡아 주고 끌어안으며 친구가 됐다. 피해자들 말을 경청하고 공감했다. 그 덕분인지 매년 40명에 이르던 소록도 피해자 사망자 수는 소송이 시작된 2004년 이후 매년 7명으로 줄었다. “한센인권변호단 활동이 소록도 피해자들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박 이사장 말대로 변호인들과의 만남은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됐던 셈이다.

박 이사장은 젊은 변호사들을 향한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으로 법조인 300명을 뽑았을 때 저도 변호사가 됐습니다. 지금처럼 사건은 없고 변호사만 많다는 얘기가 있었죠. 이럴 때일수록 청년 변호사들이 다양한 분야의 공익 활동에 관심을 갖다 보면 자신만의 영역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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