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나가는 것만으로 모든 선수가 금메달. 국민과 함께 응원할 것"

축구스타 안정환이 9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 달리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9일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성화 점화였다. 성화 최종 주자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스타들이 선정됐다.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42)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성화는 골프의 박인비(30), 축구의 안정환(42)을 거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22)와 정수현(22)에게 건네졌다. 계단 위에서 박종아-정수현을 기다리고 있던 마지막 성화 주자는 ‘피겨 퀸’ 김연아(28). 빙판 위에서 화려한 연기로 성화를 맞이한 김연아는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원래 계단에 올라 김연아에게 성화를 전달하기로 돼 있던 사람은 안정환이었다. 하지만 개회식 전날 밤 남북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하는 걸로 급하게 바뀌었다. 이에 대해 송승환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 참가는 (개회식) 전날 밤에 결정돼 리허설 할 시간이 없었다. 전날 밤 대역을 써서 비디오로 촬영해 남북 선수에게 보여주고 리허설 없이 진행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안정환은 수차례 예행연습까지 하고도 갑자기 순서가 하나 뒤로 밀렸지만 10일 본보 통화에서 “(순서가 바뀐 건) 전혀 상관없다. 난 영광스럽게 생각 한다”며 “남북 선수들이 내 성화를 받아 김연아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고 정말 보기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안정환과 일문일답.

-성화 최종 주자 중 한 명으로 개회식에 참가한 소감은.

“다른 말이 뭐 필요가 있나. 너무 영광스러웠다.”

-춥지는 않았나.

“우리(출연자)도 우리지만 예행연습 때부터 지켜보니 개회식 준비하시는 분들이 정말 고생 많으셨다. 현장에 가보니 스태프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더라. 고생은 그 분들이 다 하는데 나는 성화 들고 영광만 누리는 것 같아 죄송했다. 힘들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을 잘 치러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준비하시는 걸 보고 감동 받았다.”

박인비(오른쪽)에게 성화를 받아 인사하고 있는 안정환. 평창=김주영기자

-성화 최종 주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건 언제인가.

“진작 들었다. 다만 구체적으로 내가 몇 번째고 어떤 역할인지 알게 된 건 얼마 안 됐다.”

-마지막 리허설은 언제 했나.

“개회식 전전날, 그러니까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예행연습을 했다.”

-그 때 김연아가 최종 성화주자라는 걸 알았나.

“당연하다. 다 같이 모여 연습했으니까. 조직위원회에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하더라.”

-계단 오르는 연습도 여러번 했다고 하던데. 갑자기 순서가 바뀌어 섭섭하지는 않았나.

“전혀. 계단 몇 번 오른 게 뭐 힘든 일이라고.(웃음) 기분 나쁠 게 뭐 있나. 나는 만약 전체 프로그램에 지장이 있다면 내가 빠져도 상관없다고까지 말했다. 조직위에서 그건 아니라고 문제 없다고 해서 참여했다. 나는 정치에 깊이 관심은 없지만 남북 선수들이 내 성화를 받아 김연아에게 전달하는 모습 보니 뭐랄까. 뭉클하고 정말 보기 좋았다.”

안정환(맨 왼쪽)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정수현와 함께 성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와 정수현이 성화대를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원래 안정환이 계단에 올라 김연아에게 성화를 전달하도록 돼 있었지만 개회식 전날 갑자기 바뀌었다. 평창=연합뉴스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일원인 된 건 어떤 의미가 있나.

“축구, 야구,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등 종목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 모두 스포츠인이다. 이런 대회를 한국에서 또 언제 하겠나. 스포츠인으로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도와야지. 내가 그 때(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 김동성 세리머니를 한 것도 우리가 억울하게 메달을 빼앗겼는데 어떻게든 마음으로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한 거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안정환은 당시 미국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뒤 이른바 ‘오노 세리머니’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2002년 초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안톤 오노(미국)가 헐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의 실격을 유도해 한국 팬들의 공분을 샀는데 그 장면을 그라운드 위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당시 오노 세리머니가 평창올림픽 개회식 후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런가.(웃음) 우리나라 선수가 억울하게 당한 거 아닌가. 그럼 우리(축구 대표팀)가 뭐라도 해서 국민들이나 김동성의 마음을 위로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됐다. 그래서 득점하는 사람이 하자고 약속 했는데 내가 골을 넣어서 하게 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 당시 화제를 모았던 안정환의 오노 세리머니. TV 중계화면 캡처

-월드컵 4강(2002년)과 원정 16강(2010년)의 영광을 누렸지만 올림픽은 뛰지 못했다.

“아쉽다. 나이가 안 맞아(축구는 올림픽에 23세 이하만 출전 가능) 나가지 못했다.”

-평창올림픽이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한다면.

“선수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피땀 흘려가며 올림픽을 준비했을지 누구보다 잘 안다. 또 온 국민이 지켜보는데 얼마나 부담스러울지도 충분히 이해한다. 좋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선수가 금메달 딴 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치지 않고 잘 경기했으면 좋겠다.”

-동계올림픽 선수 중 인연 있는 선수가 있나.

“개회식 끝나고 여자 아이스하키 박종아 선수가 팬이라고 찾아왔더라. 박종아 선수랑 같이 성화를 든 북한 선수도 함께 와서 사진도 찍었다. 나는 솔직히 여자 아이스하키에 대해 잘 몰랐는데 팬이라고 하니 미안하고 고맙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이 멋진 경기 보여줄 거라 믿는다. 여자 아이스하키 외에도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 모두를 국민들과 함께 응원하겠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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