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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사회 운동을 해치는 조직

입력
2018.02.09 14: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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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신당을 창당하면서 하루아침에 당명을 결정하는 곳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수개월에 걸친 토론을 통해서야 겨우 당명에 합의하는 곳도 있다. 좋게 보자면 첫째 정당은 유능한 것이요, 둘째 정당은 민주적인 것이겠다. 그 민주적 정당은 과거 진보신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지금은 신문에도 오르내리지 않는 초소형 정당이 되었지만 여전히 각종 진보적 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에는 빠지지 않고 있다.

지난주 이 군소정당과 엮인 스캔들이 있었다. 어느 노동조합 활동가의 고백에 따르면, 그 노동조합과 그 정당의 활동방침을 결정하는 ‘언더조직’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조직의 결정에 따라 허수아비로 살아왔으며 희생을 떠맡아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다른 활동가들의 양심고백이 줄을 이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언더조직의 존재는 이미 여러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재작년, 견디다 못한 당원들의 대거 탈당이 이어지면서 바깥 세계로 소문이 퍼졌다. 비선 핵심이라는 의혹을 받는 사람들의 실명을 비롯해 그 조직에 운영자금을 대고 있다는 회사의 이름까지 등장하는 구체적인 소문이었다.

정치활동의 자유가 책 속에만 있던 시절엔 겉으로 드러난 단체와는 다른 비밀조직을 구성하는 일이 흔했다. 붙들려가더라도 항거를 계속하기 위해서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며 비밀조직도 대부분 사라졌지만 일부는 여태 남아, 집단의 의사결정을 흔드는 비선조직이 됐다. 다섯 명이 논의하는 사항을 두 명이 미리 설계하면 회의를 주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소수 파벌이 전체 집단을 장악하는데, 순진하리만치 민주적인 집단일수록 이런 장악에 취약하다.

운동권 비선조직의 문제는 독단적 의사결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선조직은 그 조직 하부의 활동가들을 착취한다. 지난주 고백을 내놓았던 이들의 글을 눈여겨보면, 마음 아프게도 그들이 한결같은 심적 고통과 우울증세를 호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수에 의해 결정이 이루어짐은 곧 권력의 집중을 뜻한다. 자기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후배’들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자신의 양심이 권위적인 ‘선배’의 지시 앞에 무력해지는 일상을 지속해왔을 터이다.

소수로 구성된 전위그룹이 활동가 개개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나는 숱하게 보아왔다. 예를 들면 ‘운동권’ 소수 그룹은 끊임없이 다른 사회운동 정파와 단체들을 지독히 비난한다. 그리 함으로써 자신들이 다른 단체들보다 더 훌륭하고 진보적이라 믿으며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젊은 활동가들은 같은 목표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주입 받는다.

그런 소수 그룹은 종종 사회 이슈를 선점하는 일에 빠져든다. 그 분야의 전문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단체들보다 먼저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하기 위해 정치적 계산을 거쳐 개입하는 것이다. 급진성을 경쟁하다 보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면 자신이 배제되므로 현실과 활동방침 사이의 모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내면의 봉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면 병이 생긴다.

세상은 완성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태어 고쳐나가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운동권이 몰락한 까닭은 사람들이 계속 떠났기 때문이다. 소수 의사결정조직에 속하지 않은 활동가는 지쳐서 떠나고, 그 조직에 포섭됐던 활동가는 다쳐서 떠난다. 늘 죄책감을 떠안고 괴로워하는 일은 떠나는 이의 몫이었다. 그러나 떠나간 개인이 심약한 탓이 아니다. 조직의 잘못이다. 사회 운동을 지속하려면 그런 조직을 버려야 한다. 독자 여러분에게 낯선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것을 말하고 싶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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