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나는 처가 동네에서 ‘악당’이 되었다

김선희 대구 성서경찰서 형사과장.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1986년, 설날 즈음에 잠복에 들어갔다. 대구에서 마약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잡으러 부산까지 내려갔다. 설 며칠 전부터 범인의 집 앞에서 잠복을 했다. 범인의 별명은 ‘용팔이’였다. 그 추운 겨울에 히터도 못 틀고 빵과 우유를 먹으며 3일 동안 차에서 지냈다.

허망하게도 설날 당일까지 범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철수를 결정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가족들은 이미 차례를 지내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문을 연 식당도 없었다. 배를 곯다가 선배 형사 집을 찾아가 떡국을 얻어먹었다. 눈물 젖은 떡국이었다. 불쑥 오기가 생겼다.

“설날이 끝나기 전에 한 놈은 반드시 잡는다!”

나는 다른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고 처가가 있는 영주로 내려갔다. 거기서도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다음날 마약사범 두 명을 잡았다. 처가가 눈앞에 있었지만 들어가지도 못하고 범인만 잡고 대구로 복귀했다. 힘들었지만 용팔이 때문에 맺혔던 마음은 후련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영주 처가에서 연락이 왔다.

“자네는 왜 영주까지 왔으면서 처갓집에 얼굴도 안 비추나? 그리고 자네 때문에 지금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어.”

알고 보니 마약사건 범인들이 처남 친구들이었다. 설날 덕담 주고받던 젊은이들이 쇠고랑을 차고 끌려갔으니 얼마나 황망했을까. 게다가 친구 매형에게.

그해 설날, 나는 처가 동네에서 명절 분위기 잡친 ‘악당’으로 찍혔다.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때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물 젖은 떡국을 두 그릇이나 먹은 명절이었다.

<김선희 대구성서경찰서 형사과장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