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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걷고 뛰어라, 영감은 다리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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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걷고 뛰어라, 영감은 다리에서 온다

입력
2018.02.08 17:5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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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차거나 땀 날 정도로 가볍게 걷거나 뛰어라. 의사도, 약사도, 정부도, 언론도 핏대 높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는 창조력의 원천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숨 차거나 땀 날 정도로 가볍게 걷거나 뛰어라. 의사도, 약사도, 정부도, 언론도 핏대 높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는 창조력의 원천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번쩍! 머리 속을 울리는 ‘유레카’의 그 순간. 왜 내겐 그 순간이 없을까 안타까움에 몸을 떨어대는 범인(凡人)들은 늘 그 순간이 궁금하다. 그 궁금증 때문에 우리는 작가의 구체적 작업 방식을 캐묻고, 목을 기다랗게 빼고 그의 작업실을 훔쳐다 본다. 겉멋든 작가라면 인생철학을 잔뜩 늘어놓겠지만, 제대로 된 작가라면 대개는 ‘궁둥이 딱 붙이고 앉아 계속 작업한다’ 외엔 딱히 내놓을 답이 없을 게다. 영감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

스웨덴 의사가 쓴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는 창의성이 걷기 혹은 달리기에서 나온다고 답하는 책이다. 비싼 기능성 옷과 신발을 걸치고 엄청난 속도나 대단한 길이를 소화해내라는 게 아니다. 간단하다. ‘1주일에 3번 이상, 너무 힘들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숨이 차고 땀 날 정도로 30~40분 이상, 꾸준히 3~4개월 이상’이면 된다. 영감은 머리에도, 궁둥이에도 없다. 다리에 있다. 심심하고도 밋밋한 이런 결론 좋다. 적어도 남의 이목을 홀려서 약 팔아 대려는 수작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광이다. 자서전을 보면 무라카미는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면 매일 점심 먹고 10㎞ 정도 뛰는 규칙적 생활을 유지한다. 상대성이론을 제시한 아인슈타인은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전설적 작곡가 베토벤은 귀가 먹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산책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자신의 정원에서 몇 시간 동안 한가하게 거니는 시간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아예 걸어 다니며 회의하는 ‘산책회의’를 도입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정보통신(IT)업계 후학들 또한 잡스를 따라 회의실 탁자 대신 산책을 택했다.

정말 그럴까. 기본 원리는 이렇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뇌 속의 해마를, 이마엽(전두엽)을 죽인다. 다양한 실험결과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해마와 이마엽이 줄어들거나 파괴된다. 해마는 기억의 중추, 이마염은 종합적 상황판단의 중추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은 기억력과 종합적 상황판단력에 큰 문제가 생긴다. 지속적 스트레스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다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한다. 오랫동안 학대 받은 아동, 극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 소외된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곤란한 상황에서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하거나 피해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조사 결과 운동은 근육뿐 아니라 해마와 이마엽을 단련시킨다.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는 움직이는 존재다. 뇌는 이 움직임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고도화하는 기관으로 출발했다. 고로 적당한 움직임이 계속 주어져야 뇌가 활성화된다. 더구나 움직임은 끊임없이 변화된 환경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이 또한 뇌에 대한 자극이다. 이렇게 단련돼 근육이 생겨난 해마와 이마엽은 코르티솔 분비를 억제한다. 분비되더라도 재빨리 치워버린다. 코르티솔이 적으니 밝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유지한다. 해마와 이마엽이 활성화되니 기억력과 종합적 상황 판단력이 좋아진다.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

안데르스 안센 지음ㆍ김성훈 옮김

반니 발행ㆍ280쪽ㆍ1만5,000원

희한한 실험결과는 여기서 나온다. 스웨덴 한 학교에서 대조군을 두고 한 집단만 매일 운동시켰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체육 수업이었다. 그런데 이 집단은 체육뿐 아니라 국어(물론 스웨덴어) 영어 수학 전 과목 성적이 다 올랐다. 특히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의 상승폭이 현저했다. 미국에서도 초등학생 대상 조사를 했더니 체력 점수가 좋을수록 다른 점수도 좋았다. 2~3개월 동안 1주일에 몇 번씩 신체활동을 정례화하면 공부하는 시간을 별달리 늘이지 않고도 수학 점수가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치매에도 좋다. 미국 연구에서는 1주일에 총 150분, 혹은 한번에 30분씩 다섯 번 정도 걸으면 치매 위험이 40% 정도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건강한 노인이 많은 장수마을이라면 흔히 작은 공동체를 지목한다. 끈끈한 사회적 유대감 덕이라는 얘기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그 동네 사람들은 무리하지 않는, 일상적인 소소한 활동들을 끊임없이 한다.

내 몸에 코르티솔이 많아졌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기 배를 보면 된다. 코르티솔은 지방 연소를 막고, 복부지방을 모으며, 고칼로리 음식에 식탐을 늘린다. ‘배둘레햄’은 코르티솔의 확실한 증거다. 동시에 스트레스가 높기 때문에, 늘 부산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다. 저자는 이런 성격을 알코올중독의 금단현상인 ‘마른 주정(Dry Drunk)’에 비유한다. 이런 체형, 성격은 투덜댈 게 아니라 일단 나가서 걷고 뛰어야 한다.

이 간단한 사실은 왜 주목받지 못 할까. 눈길 끌만한 일이 아니어서다. 아니, 사실 뭐 그럴듯한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의사도, 약사도, 정책기관도, 언론도 이런 얘길 다들 흘려 듣기 때문이다. 가만 앉아서 살 빼고 스트레스 풀어준다는 얘기가 지천으로 널린 상황에서, 뭔가 장사될 만한 얘긴 아닌 게다. 디지털 시대 도래와 함께 반전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회사 사무실에서 일어서서 근무하는 풍경이 나온다. 사무실을 수평적으로 배치하거나, 책상을 복잡하게 배치해서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더 복잡하게 돌아다니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뇌가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영감은 다리에서 나온다는 깨달음 덕이다.

당장 우리 교육 현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책상 앞에 기계적으로 앉아있도록 하는 것 보다는 자유롭게 뛰노는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거다. 해마가 쪼그라들며 이마엽이 썩어가는 남학생들 억지로 앉혀놔 봐야 자는 것 밖에 더 하겠는가. 수학 문제 푸느라 낑낑대느니 그 시간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게 성적 향상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긴 한국이다. 학원 건물 안에 트랙을 만들면 어떨까. 학원 빌딩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게 한다면? 독서실에다 트레드밀을 들여놓으면 어떨까. 그것도 아니라면 학원 건물 마다 국민체조 교실을 만들어야 하나. 이것도 책 덮고 30분 정도 산책하고 나니 든 생각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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