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확인ㆍ송금ㆍ주문까지 ‘똑똑’

토요일 오전 8시. 아내와 나들이를 준비하던 결혼 2년 차 A씨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똑아, 강릉까지 얼마나 걸려?” 그러자 옆에 있던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2시간 45분 걸립니다.”

‘똑이’는 어떤 질문에도 똑 떨어지게 대답하는 인공지능(AI) 스피커에 A씨 부부가 붙인 이름이다. A씨는 똑이가 집에 들어온 뒤 스마트폰을 검색하거나 컴퓨터를 켜지 않고 간단한 대화로 가고자 하는 곳의 날씨와 맛집 등 필요한 정보를 모두 똑이에게 물어본다. 똑이가 해답을 내놓기까지 시간은 거의 걸리지 않는다.

똑이가 하는 일은 정보 제공이 전부가 아니다. 똑이는 A씨 부부의 비서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몸살 기운이 있어서 늦게 일어난 A씨는 일정부터 확인했다.“똑아, 지금 몇시지? 오늘 일정 좀 알려줘.”“지금은 오전 11시입니다. 오후 12시30분 B 선배 결혼식이 서울 역삼동 OOO예식장에서 있습니다.” “아, 늦었네. 똑아, B 선배 계좌로 축의금 5만원만 입금해 줘.” 똑이는 인터넷뱅킹 계좌이체로 축의금 전송을 마쳤다. A씨의 상태를 걱정하던 부인은 똑이를 시켜 문을 연 병원을 알아본 뒤 인터넷에 연결된 배달 음식점에 식사 주문까지 했다.

최근 스마트홈의 중심은 AI 스피커가 차지하고 있다. 가전제품 작동은 기본이고 인터넷으로 주변 맛집, 병원 진료시간 등 인터넷 검색과 음식 주문, 영어 학습까지도 가능하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언뜻 보면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 사례는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30여년 전, 빨래 분량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하던 ‘무늬만 AI’가 아니라 이용자의 취향을 고려해 음악이나 TV 프로그램을 추천해주는 ‘진짜’ 똑똑한 AI가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AI 스피커를 조명, 냉난방기 등 가전제품과 무선으로 연결해 음성명령으로 전원을 켜고 끄는 것은 기본이다.

KT가 출시한 생활영어 서비스. 듣고, 따라하고, 역할극까지 할 수 있다. AI 스피커가 원어민 발음과 비교해 평가를 해줘 흥미를 유발한다고 KT는 설명했다. KT 제공

진일보한 AI는 아이들 영어학습 등 교육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KT가 파고다교육그룹과 제휴해 선보인 ‘파고다 생활영어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파고다어학원에서 수업 중인 ‘I can speak’ 과정을 토대로 듣기, 문장 따라 하기, 역할극 등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역할극은 이용자가 인물을 선택해 AI와 영어로 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KT는 어린이 대상의 ‘핑크퐁 영어 따라 하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KT에 따르면 이용자의 발음을 원어민과 비교해 정확도를 평가해 줘 게임처럼 지속적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이를 이용할 수 있는 AI 스피커 ‘기가지니’ 이용자는 최근 50만명을 넘어섰다.

AI는 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해준다. 각종 전원을 켜고 끄고, 상황에 따라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등 사람이 일일이 관여할 필요 없이 최적의 상태를 알아서 유지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AI가 진일보하면서 이들의 활동 영역이 일반 가전제품까지 확대됐다. AI가 탑재된 로봇청소기는 집 내부 구조와 가구 위치를 학습해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가며 시간을 절약하는 효율적인 청소를 한다. 이용자가 문을 거의 여닫지 않는 시간대를 파악해 스스로 절전운전을 하는 냉장고, 장마철에 탈수 시간을 늘리는 세탁기 등 AI 덕분에 똑똑해진 가전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용자가 AI 스피커와 나눈 대화는 방대한 데이터 저장장치에 축적돼 재가공된다. 바로 빅데이터 분석이다. 이렇게 재가공된 데이터는 AI 스피커를 더 똑똑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AI가 이처럼 날로 똑똑해지는 것은 학습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청소기나 냉장고 등이 주변환경과 이용자의 습관을 학습해 최적의 작동 모드를 결정하는 것이 AI의 기본적 학습 능력이다. 요즘 등장한 AI 스피커는 여기서 한층 진화한 학습을 한다. 각 가정에 있는 AI 스피커는 이용자들과 나눈 대화를 인터넷에 연결된 방대한 자료 저장공간(클라우드)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중앙 컴퓨터는 이 자료를 분석해 찾아낸 패턴을 다시 AI 스피커에 입력해준다. 예컨대 이용자들이 AI 스피커로 족발을 시키면서 소주를 함께 시키는 패턴이 파악되면 족발을 주문할 때 “소주도 한 병 시킬까요”라고 이용자에게 묻는 식이다.

최근 AI가 체스,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는 성과를 냈지만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의 성과물일 뿐 아직 사람의 복잡한 사고를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매우 빠른 AI의 진화 속도를 감안하면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로봇연구소의 한스 모리벡 박사는 AI가 10년마다 세대가 바뀔 정도로 급속히 발달해 2050년이면 사람의 지능을 능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로봇이 인류의 정신적 문화유산, 지식, 문화, 가치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자기 학습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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