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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모두가 승자되는 상상은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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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모두가 승자되는 상상은 꿈일까

입력
2018.02.08 15:4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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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늘 개막, 북미 대결로 평화 기로

김여정 파견-열병식 축소 등 메시지 주목

'평창 이후 평화' 관리 당사국 지혜모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IOC 위원 소개행사에서 북한 장웅 IOC위원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IOC 위원 소개행사에서 북한 장웅 IOC위원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 개촌식 풍경을 보도한 2일자 본지 3면은 '코피작전 흘리는 미, 열병식 고집하는 북...평화올림픽 찬바람'이란 제목을 달았다. 이날은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휴전 결의가 발효된 첫날이다. 즉 '평창올림픽 개회 7일 전부터 패럴림픽 폐회 7일 후인 3월 25일까지 52일 동안 적대행위를 금하는 결의의 시작은 이렇게 음울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오늘 지구촌 92개국에서 2,925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17일 간의 일정으로 개막된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전쟁을 멈추고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축제가 열려야 할 평창엔 여전히 칼바람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로 빚어진 한반도 긴장의 이해당사자들이 평창을 정치 선전장으로 오염시키며 말 폭탄 등 대결과 협박이 춤추는 무대로 만들어서다.

지금 평창엔 역설적으로 3개의 평화가 맞부딪치고 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북한이 고집하는 '핵 있는 평화'와 미국이 주장하는 '핵 없는 평화', 그리고 우리가 얘기하는 '동결한 평화'가 그것이다. 체제안전의 자위권 차원에서 결코 핵무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북한에 대해 미국은 레드라인을 넘나드는 깡패국가를 힘으로 손봐 주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치킨 게임을 벌이는 양자 가운데 낀 우리는 핵 동결로 입구를 열어 남북대화를 끌어내고 북미대화를 주선해 어떻게든 전쟁의 유령을 없애야 한다. 문제는 '항구적 평화'로 가려는 차의 운전석 뒤에 앉은 두 승객이 호전적이고 불량하게 매번 안전운행을 방해하는 점이다.

휴전 제스처는 북한에서 먼저 나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민족적 대사'를 거론하며 북남 관계 개선을 언급한 게 물꼬를 텄다.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북한은 동시입장과 단일팀 구성은 물론 대규모 예술단ㆍ응원단 파견 등 평창 흥행을 주도하는 한편 평화를 애호하는 '정상국가'로 변신해 왔다. 올림픽을 체제선전장으로 활용, 국제사회의 제재공조를 약화시키고 '평양올림픽' 논란 등 남남 갈등을 촉발하려는 의도가 줄곧 의심됐지만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기회를 잘 살려 역사적 명장면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더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침내 5일 열린 IOC 총회 개회식 축사에서 "안전의 염려는 사라지고 (남북 단일팀 구성 등) 상상은 현실이 됐다"며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라고 감격스럽게 반문했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 김정은은 고위급대표단을 이끌 단장에 헌법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또 3인 단원에 '백두혈통'이자 자신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포함시켜 남북정상 간접대화 기대를 높였다. 그의 무게감과 상징성은 '실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건군절 열병식도 대내용으로 치러 대화 메시지를 보탰다.

문 대통령이 어렵게 평화의 입구를 찾았지만 출구는 한층 복잡해졌다. 우선 정부가 북한 참가를 위해 수시로 원칙을 바꾸고 무례와 예외를 인정하는 등 이른바 '평화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한 까닭에 평창 이후 한반도 정세에 따라 신뢰 위기에 처할 위험이 크다. 또 북한의 이니셔티브를 따라가다 미국이 주도하는 비핵화 대북제재 대열에 크고 작은 금이 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최근 동선과 언행을 감안할 때 북한의 평화공세가 결국 호전성과 야만성을 감추려는 위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면 문 정부는 왕따가 되고 한반도 위기는 한층 고조될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 운명의 키를 움켜쥔 미국과 북한에 지렛대를 행사할 여지는 거의 없다. 더구나 양측의 불신은 함께 앉기를 거부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전쟁이 답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니 쥐든 고양이든, 궁지로 몰아선 안 된다. 평창의 승리는 꼭 선수들만의 것이 아니다. 살얼음판 위에서 남북과 북미가 나의 승리만 찾는다면 모두 패자가 된다. "모두가 승자되는 평창, 그 상상만으로도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아리아리!"

이유식 논설고문 jtinolee@hankook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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