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한 글자 사전’ 낸 김소연 시인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에서 만난 김소연 시인. 류효진 기자
#시인 감성으로 벼리고 졸인
한글자 310개 날카로운 풀이가
6000부 이상 팔리며 공감 얻어

“문단 술자리? 지겨워서 안간다
어르신들 손버릇에 술도 싫어져”

‘국’. 아버지가 없는 밥상에서 더불어 없어졌던 메뉴.

‘굴’. 아버지의 밥그릇 앞에만 놓여 있던 겨울철의 특식.

김소연(51) 시인의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에 따르면 그렇다. 책은 ‘감’부터 ‘힝’까지, 310개 글자의 뜻을 다시 매긴 시인의 사전이다. 말과 글이 넘치는 시대, 언어다운 언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지난주 서점에 내놓은 지 사흘 만에 초판 3,000부가 다 나갔고, 더 찍은 3,000부도 소진됐다. “시가 아닌 모든 외도를 하고 나면 쑥스럽다”는 김 시인을 최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났다.

‘국’과 ‘굴’의 정의는 가부장제의 슬픈 체험에서 나왔다. 김 시인의 어머니는 우리가 아는 그런 어머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국도 찌개도 끓이지 않는, 싱크대 앞에 서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어머니가 시래기국을 굉장히 즐겨 드셨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 시래기국을 끓여 드린다고 하니까 화를 내셨어요. ‘나 시래기국 안 좋아한다’면서요. 제가 좋아해서 자주 먹은 아이스크림처럼, 어머니에겐 시래기국이 그런 음식이라 생각한 거죠.” 어머니가 정말로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양보해 온 모든 음식들이래요. 닭다리 같은 거요. 아버지가 지난해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는 닭다리를 드신대요. 저에게 닭다리가 돌아온 것도 한 살 위 오빠가 죽은 뒤였어요.”

김 시인은 1993년 등단해 시집 네 권과 산문집 세 권을 냈다. 대학 교수, 출판사 편집자 등을 겸직하지 않고 시에 삶을 건 전업 시인이다. 그는 언어를 벼리고 졸인다. ‘말맛’이 제대로 날 때까지. “모든 문장에서 면도날이 쓱 지나가는 글이 좋아요. 시인만 언어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기 언어는 거칠게 쓰고 남의 언어엔 민감하게 반응해요. 상처 준 건 모르고 상처받은 것만 알죠. 또 말이 전부가 아니에요.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으니까 전부인 줄 아는 거예요.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힘든 일 때문에 엉엉 울면서도 ‘나 요즘 즐거워’라는 명랑한 문자를 보낸 적이 있어요. 그런 괴이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에 경악했죠.”

김소연 시인. 류효진 기자

글이 쉽게 쓰여지는 게 부끄러움이 아닌 세상에서 시와 시인의 역할을 물었다. “시인은 의사소통 목적으로 언어를 쓰지 않아요. 사회적 언어가 해결하지 못하는 진실의 영역에 촉수를 뻗어요. 언어에 대한 의심과 반감을 지니고서요. 하나의 기호에 불과한 언어를 맹신하거나 사회적 언어에만 기대고 살면 얼마나 많은 진실을 놓치는가를 보여 주는 사람이 시인이에요.” 인공지능(AI)이 시를 쓸 수 있을까. “못 써요. 시는 언어를 극도로 숭배하면서 극도로 미워해야 쓸 수 있어요. 기술과 긴장감이 몸에 배어 있어도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지 않으면 금세 후져지는 게 시예요. 시의 세계는 노련함과 숙련미가 무가치한 세계예요.”

산문 속 김 시인은 덜 날카로운 화자다. ‘이것에 같이 탄 타인을 라이벌로 간주한다. 이것을 채우기 위하여’(‘배’의 정의) ‘안에 갖고 있기도 싫고 밖에 두고 보기도 싫지만 내보내는 순간 쾌락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쓰는 말과 닮았다’(‘똥’) 유쾌한 비유로 세계를 슬쩍 비튼다. “글이 거부감 없이 스며들게 하려는 전략이에요. 시인의 첨예함에 사람들은 저항감을 느끼는데, 저항감 없이 감염시켜 보려는 거죠.” 김 시인은 책 날개에 쓴 저자 소개 글에서 “심심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외로움은 예술가의 뮤즈라고 했던가.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 있음’을 좋아해요. ‘혼자 있을 때 외로움과 함께 있지 말자’가 목표죠. 사실 몇 년 전까지 팔로어가 2만명쯤 되는 트위터리안이었는데, 계정을 없애 버렸어요.”

김 시인은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가 끝내 좌절한 것을 지켜본 목격자이자, 성폭력 문화의 피해자다.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문단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내부고발자예요. 그 일이 벽을 더 단단히 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너무나 만연하고 창피할 정도의 술자리 문화는 개선된 듯 하고요. 사실 문단 술자리는 지겨워서 안 가요. 어르신들의 손버릇 때문에 술 자체가 싫어졌거든요.” 김 시인을 만난 건 최영미 시인의 “En 시인의 손버릇” 폭로가 오르내리기 전이었다. 두 여성 시인이 ‘그들의 손버릇’에 함께 치를 떤 건, 문단이 여성을 취급하는 방식이 그 만큼 지저분하다는 뜻일 터. 김 시인은 봄에 새 시집을 낸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한 글자 사전
김소연 지음
마음산책발행∙400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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