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안태근 전 검사장의 여검사 성추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민들이 하나같이 이 사건에 공분하는데도, 분뇨에 절은 검사들은 똥통에서 헤어 나올 낌새가 전혀 아니다. “문제 제기 방식이 잘못됐다”느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느니, “이제 와서 왜 그러냐”’느니 하는 정도는 약과고, 피해자의 업무 능력과 성격을 거론하면서 폭로 동기를 불순하게 보는 검사들이 있다. 그나마 서 검사는 검찰청 동료로부터 ‘꽃뱀’이라는 누명만은 덮어 쓰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검사와 같은 특별한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빽’ 없고 힘없는 여성들은 성추행이나 성폭력 신고를 하고 나서 거의 반드시 ‘꽃뱀’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성 관련 피해를 고소하거나 폭로한 여성에게 붙여지는 이 주홍글씨는 딱히 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악행이 아니다. 조디 래피얼의 ‘강간은 강간이다’(글항아리, 2017)에 나오는 한 사건을 보자.

2011년 5월 14일 낮 12시, 맨해튼에 있는 최고급 호텔 특실에 투숙했던 쉰네 살의 프랑스 남자가 객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서른두 살의 여청소원 나피사투 디알로를 강제로 덮쳤다. 7~9분 동안의 성폭행이 끝나자 디알로는 호텔 경비원에게 이 일을 알렸고, 뉴욕 경찰은 이튿날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막 유럽으로 이륙하려는 에어 프랑스 기내에서 이 남자를 체포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 총재이자 프랑스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었다. 이 극적인 사건은 열흘 동안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은 명백히 강간임을 증명했지만, 칸은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칸을 옹호하는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은 언론을 통해 ‘청소원을 믿느냐? 경제학자를 믿느냐?’를 양자택일하라면서, 디알로를 꽃뱀으로 몰아 붙였다. 실제로 기니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한 디알로는 망명 신청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기니 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했다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 데다가, 마약거래와 돈세탁 등의 범죄에 연루된 남자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신고를 하기 전에 갖추고 있어야 할 엄격한 자격을 암시해 준다. 피해 여성은 어린 시절 궁핍하게 자랐거나 불우한 추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기ㆍ절도ㆍ거짓말 하는 버릇이 있어서도 안 되고, 전과를 가진 남자 친구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피해 여성 자신은 물론 가족 가운데 누구라도 신용카드가 정지되었거나 빚이 있어도 안 되며, 현재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도 안 된다. 이 가혹한 자격을 모두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란다.

남성들은 유사 이래 어떤 강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간 부정 논리’를 꾸준히 개발해 왔고, 칸 사건은 강간 부정 논리의 온갖 요소를 집대성해 보여주었다. 칸처럼 유명 인물은 강간범이 될 수 없다는 희극적 변호는,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스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면 강간범이 아니라는 강간 부정론자의 억견(臆見)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긍정적 역설을 낳았다. “최근 전례 없이 쏟아진 유명인 관련 사건은 결과적으로 강간 신고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이제 대중은 매우 능력 있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알려진 공무원도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꽃뱀 프레임’은 ‘유혹 하는 사람=악’ ‘유혹 당하는 사람=피해자’라는 등식 위에서 작동한다. 저 프레임을 낙후시키려면 유혹에 대한 선입견을 새로 정의하고 전복해야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강간을 저지른 남자를 방면하고, 도리어 강간당한 여자를 남자를 유혹한 죄로 엄벌한다. 이처럼 전통(전근대) 사회가 유혹을 악으로 간주하는 반면, 현대 사회는 유혹을 나쁘거나 더럽게 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는 일찌감치 징치되고 금지되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유혹하는 능력을 선으로 보는 동시에, 그것에 대응하는 것을 지혜이자 자기 책임으로 본다. 유혹에 넘어간 주제에 꽃뱀을 정죄하는 남자들은 어리석고 무책임한 아이나 같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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