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 격려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년 전 대한민국 최초 여자아이스하키팀을 다룬 영화 ‘국가대표2’를 본 적이 있다.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스포츠정신을 다룬 전작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나름 기대를 갖고 영화관을 찾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던 기억이 난다.

새삼 이 영화를 떠올린 건 주요 모티프 중 하나가 남북 대결 구도라는 점 때문이다. 대학팀이나 실업팀은커녕 변변한 리그 하나 없는 한국에서 분투하는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의 얘기가 주요 줄기지만, 영화는 중반쯤부터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을 배경으로 실제 펼쳐진 남북 대결도 소재로 삼는다. 탈북자 출신 한국 국가대표 언니와 홀로 북에 남겨졌지만 커서 북한 국가대표가 된 여동생이 아시안게임 3,4위전에서 만나 그간의 오해를 풀고 다시 가족애를 되찾는다는, 조금은 뻔한 스토리다.

여자아이스하키팀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이라는 새로운 화두 앞에 서 있다. 그 때는 적이지만, 지금은 동지가 되어 한 배에 탔다. 부족한 연습 시간과 팀워크 등 당장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현실도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스위스 로잔에서 남북 단일팀 협상을 하고 돌아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상기된 얼굴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뤘던 남북 단일팀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고생했던 남한 선수들에게 기회의 박탈이라는 문제가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 국가대표선수촌까지 직접 내려가 “남북 단일팀 자체가 역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라며 선수들의 등을 두드려줬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역사적 명장면을 위해 대표팀 선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들었고, 결국 “선수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 문제를 앞장서 제기한 20대는 공정성 이슈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불공정한 사회구조 때문에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게 되는 첫 세대가 될 거라고 하니, ‘수저계급론’이 가장 와 닿는 게 당연하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재벌 3세의 이미지로 다가올 뿐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내에서 ‘20대의 불만은 보수정권 9년 동안 잘못된 통일 교육에 노출된 결과’라는 원인 진단이 흘러나온다.

햇볕정책을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 대표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지난달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통일을 하지 않거나 미뤄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국민 여론이 88.2%나 됐다. 평창 해빙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최소한 북핵 동결이나 미사일 개발 중단 합의 정도는 받아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대화를 타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게 햇볕정책 때와는 다른 국민정서다.

1960년대 운동권 학생의 영웅이었던 미국의 도시빈민 운동가 사울 알린스키는 신좌파(New Left)가 혁명 의욕에 너무 충만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the world as it is)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the world as we would like it to be)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한다고 비판했다.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힘을 모아달라’며 저자세 논란에도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을 살려나가려는 문재인 정부는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

여자아이스하키팀의 첫 경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단일팀 구성의 성장통은 빠르게 지나가는 중이다. “함께 훈련한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속상하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최선을 다하면 너희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세라 머리 감독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이제 아이스하키가 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겨우 스포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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