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와인과 커피에 정통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와인과 커피의 세계는 변화무쌍하고 다양해 보인다. 그런데 나는 마시면서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그 친구가 부럽고 그 친구는 내가 안타까운 것 같다. 김치찌개와 동태찌개에 정통한 다른 친구는 내게 짜증을 내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모, 너에겐 맛있는 음식을 먹여봐야 의미가 없어.” 악담이 아니라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 나는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음식점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갈비탕을 주문할 때 종업원이 “보통으로 드릴까요, 특으로 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는 집보다는 군말 없이 갈비탕을 주는 집이 잘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보통 2,000원 정도 더 비싼 특이 더 좋은 게 당연하겠지만 “우리 집은 ‘보통’도 자신 있어요”라는 자세가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과학자를 한 명 꼽아보라고 하면 대개 가장 먼저 부르는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왜 그 사람이 가장 훌륭한 과학자냐고 물어보면 상대성 이론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때 상대성 이론을 얼마나 이해하냐는 짓궂은 질문을 간혹 한다. 이 질문이 짓궂은 까닭은 “일반 상대성 이론까지는 이해가 되는데요, 특수 상대성 이론은 정말 어렵더라고요.”라는 얼토당토않은 대답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름만 보면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토대로 더 깊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특수 상대성 이론은 1905년에 발표되었고 일반 상대성 이론은 10년 뒤인 1915년에야 발표되었다. 기초적 일반이론보다 10년 앞서서 더 어려운 특수이론이 발표된 셈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당연히 안 된다. 따라서 특수 상대성 이론이 일반 상대성 이론보다 더 특수하게 어려운 이론일 수는 없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속도가 일정한 계’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적용되는 이론이다. 이에 반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계’까지 다 적용되는 이론이다. 특수한 조건이 아니라 일반적 조건에서도 적용된다고 해서 ‘일반’인 것이다.

상대성 이론은 어차피 어렵다.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아니라 물리학자들도 못 한다. 아마 아인슈타인도 여기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짓궂은 질문에 얼토당토 하지 않은 답을 하지 않을 만큼은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그 따위 상대성 이론을 어디에 쓴다고 내가 다 알아야 해?”라고 따지시는 분들 꼭 계신다. 독자들 가운데 상대성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GPS가 바로 그것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휴대전화 위치추적 기능은 GPS를 활용한 것이다. 내비게이션과 휴대폰은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약 2만㎞ 상공에 있는 인공위성들이 서로 협력하여 내 위치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위성과 지구 표면 사이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인공위성은 초속 8㎞로 움직이고 있다. 인공위성의 시간은 지구 표면의 자동차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른다. 하루에 7마이크로초 더 느리게 흐른다.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이 차이를 보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일이 간단하지 않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큰 지역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지표면은 인공위성이 있는 상공보다 중력이 크다. 이번에는 반대로 지표면의 시간이 인공위성의 시간보다 45마이크로초 더 느리게 흐른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인공위성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지표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두 가지 효과를 합하면 인공위성의 시간이 지표면의 시간보다 하루에 38마이크로초 그러니까 0.000038초 빨리 흐른다. 겨우 0.000038초 가지고 뭘 그러냐고 무시하면 안 된다. 빛은 그 사이에 11.4㎞를 간다. 이 오차를 보정하지 못하면 GPS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아니 매우 위험하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만들겠다고 GPS 시스템을 개발한 게 아니다.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다. 엉뚱한 곳에 폭격을 해서 죄 없는 민간인이나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1905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보다는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이 더 뛰어난 과학자다. 마찬가지로 꼭 ‘특’을 먹어야 하는 갈비탕 집보다는 ‘보통’을 먹어도 만족할 수 있는 갈비탕 집이 더 좋은 집이다. 법은 어떨까? 굳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보다는 일반법으로 해결되는 상황이 더 안정적인 상황일 것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특검이 구성되어야 하는 상황은 불행한 상황이다. 일반 검사들을 믿지 못해서 특별한 검찰 조직을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6일 재벌 총수가 풀려났다. 무죄 선고를 받은 부분을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판결을 내린 특수한 법원인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