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환자ㆍ방문객 편의시설 명목
쇼핑몰 버금가는 식당 갖추고
부대사업 수익 올리기에 열중
세브란스병원 화재 일으킨 화덕
불맛 식당 등 안전 위협 우려 크지만
현행 규정상 아무런 제한 못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3층 화덕 피자집에서 합동감식반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그림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3층 화덕 피자집에서 합동감식반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화덕 피자집, 수제버거 전문점, 호떡집, 쌀국수 전문점, 동남아 퓨전음식점….

지난 3일 화재가 발생해 환자 3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병원 내 편의시설 명목으로 설치한 음식점 수와 종류가 대형 쇼핑몰 전문 식당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5일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병원 본관 3층에는 음식점과 찻집 등 14곳이 들어서 있고, 본관 근처의 연세암병원에도 지하와 지상층 곳곳에 음식점과 빵집 등 9곳이 성업 중이다. 방문객과 환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게 병원 측의 설명. 그러나 이런 음식점 중에는 수백도에 달하는 고열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고위험 설비를 둔 곳이 적지 않다. 실제 이번 화재는 피자집 화덕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이 발화 원인이 됐다. 실내 화덕은 소방기본법 시행령에 불연재료 또는 흙바닥 위에 만들어야 하고 벽이나 천장 역시 불연재료로 시공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로 둘 정도로 위험성이 크다. 특히 병원은 화덕 등을 이용하다가 화재가 나면 거동이 불편한 중환자, 노인 등 ‘피난 약자’가 많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 전문 식당가를 둔 곳은 신촌세브란스병원 뿐만이 아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은 동관 지하 1층을 거의 전부 음식점 등으로 채우고 있는데, 이중 중식당 등 음식 조리를 위해 강한 불을 사용하는 식당도 있다.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의 푸드코트에도 ‘불맛’을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는 중식당이 있고,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피자집이 들어서 있다.

새로 증ㆍ개축하는 병원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올 연말 완공을 앞둔 서울대병원 첨단외래센터의 경우 병원 측이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하 1층을 모두 전문 식당가 등 부대시설로 채우고, 의료 시설은 지하 2~3층에 두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가 노조와 국회의 반발로 재검토에 나선 상황이다.

이 같은 대형병원의 ‘전문 식당가화(化)’ 현상은 병원의 의료 외 수익 사업 확대에 원인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병원들은 수익성이 환자 치료보다 높은 부대사업에 힘을 쏟으며 식당과 주차장, 장례식장, 마트 등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면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선진국은 안전은 물론 환자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 등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병문안 문화가 발달하고 병원의 의료 외 수익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기현상이라는 것이 정 국장의 설명이다.

영리사업을 위해 화덕 피자나 중식당 등 화재 고위험 식당들이 병원에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현행 규정상 아무런 제한을 둘 수 없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장례식장, 주차장, 휴게ㆍ일반음식점, 미용업 등으로 한정해 놓고 있지만 식당 업종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의료법인이 아닌 학교법인(신촌세브란스병원ㆍ서울성모병원), 재단법인(서울아산병원), 사회복지법인(삼성서울병원) 등은 금지하는 부대사업의 범위 규제가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부대사업을 전면 규제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은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팀장은 “그간 병원 경영이 어렵다는 논리로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마구 늘려놨지만 병원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화재 등 사고와 관련한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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