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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우리에게는 없고 중국에는 있는 것

입력
2018.02.05 18:2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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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볼 때는 나와 같은 바를 온전히 읽어냄만큼이나 다른 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괜찮은 방도의 하나는 우리에겐 없는데 그들에겐 있는 것을 찾아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이다.

중국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겐 없지만 중국엔 있는 걸 찾아서 검토해본다는 뜻이다.이를테면 중국만이 지닌 광활한 영토와 엄청난 인구, ‘중국’이란 정체성을 공유하며 이어진 유구한 역사 등에 주목하고, 이를 검토함으로써 중국 이해를 시도하는 식이다.

이중 유구한 역사는 우리에게도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나 중국 모두 4,000년을 상회하며 면면히 이어진 역사를 지녀왔기에 그렇다. 그러나 양자 사이엔 사뭇 다른 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중국은 ‘중국’이란 명칭을, 그것이 쓰이기 시작한 이래 적어도 3,000여 년 간 공유해 왔지만 우리에겐 이에 필적할 만한 역사가 없음이 그것이다.

중국이란 표현은 기원전 11세기 무렵, 주라는 제후의 나라가 천자의 나라로 거듭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주라는 자기들만의 국명이 있었음에도 ‘나라들의 중심’이란 가치론적 지향이 담긴 ‘중국’이란 명칭을 함께 썼던 것이다. 이후 전개된 역사에서는 한족이 정권을 잡든 비(非) 한족이 정권을 잡든 간에 중국이라는 정체성이 공유되었다. 한, 당, 송, 명, 청 같이 그때그때 정권을 잡은 왕조를 나타내는 국명과 가치론적 지향을 표방하는 중국이라는 국명이 통시적으로 함께 사용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중국은 천하 권력을 누가 잡아도 중화로 대변되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올 수 있었다. 중원을 점령한 만주족의 청조가 ‘강희자전’을 편찬하고 ‘고금도서집성’이나 ‘사고전서’ 같은 대규모 문화 사업을 전개하자, 한족 지식인이 떳떳하게 청조에 협조했음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들은 중화 보전에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비 한족 왕조에 협조했지 이른바 ‘오랑캐’가 기세 등등했다거나 생계 때문에 청조에 가담했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것이 중국이 비 한족이 권력을 잡아도 그 넓은 영토와 그 많은 인구를 유지하며, 또 오랫동안 분열됐다가도 다시 통일을 일궈내며 중화를 오늘에까지 지속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이와 유사한 역사가 없다. 고구려나 신라, 백제 사람들에겐 예컨대 ‘우리 한국’이나 ‘우리 단군의 후예들’과 같은 정체성이 공유된 적이 없었다. 고려나 발해,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왕조를 관통하며 통시적으로 사용된 하나의 정체성은 없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다. 서구 근대문명이 ‘문명의 표준’으로 거세게 밀려오자 우리는 서둘러 ‘단일민족의 신화’를 고안하여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는 역사를 하나의 계보로 묶어냈다. 외래문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족(nation)’이란 근대적 주체를 빚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중국은 그러하지 않았다. 중국이란 정체성이 이미 오랫동안 공유됐던지라 굳이 주체를 새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다만 오랜 자만에 빠져, 비유컨대 잠들어 있어 무기력해진 중국을 각성시켜 근대적으로 개조하면 됐다.

우리의 근대화가 단일민족의 신화를 나름 성공적으로 공유하게 됐음에도 서구 근대문명 중심으로 전개됐음에 비해, 중국은 서구 근대의 소산인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신중국을 구축했음에도 그것이 ‘중국적 특색’을 지녔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전통문화와 같은 봉건 잔재의 청산을 내걸었던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국명에 ‘중화’를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견지할 수 있었다.

이제 ‘G2’ 급으로 성장한 중국은 공자로 대변되는 중국 전통문화, 곧 중화를 21세기 국제적 문명표준으로 정립하려는 욕망을 애써 감추지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최고 지도자가 된 이래 줄기차게 표방해온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정책에는 경제, 군사, 외교 차원서의 국가적 욕망뿐 아니라 중국문화의 국제적 발산이란 욕망도 짙게 서려 있었음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19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자대회 연설에서 ‘신시대 중국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문화는 중화민족 5,000여 년 문명 역사가 배태해온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단언한 데서도, 대내적으론 국가의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론 중국문화의 영향력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는 강조에서도 목도된다.

역대 중국을 ‘문화 중국’이라 규정한 학계의 통찰이 지금의 중국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이다. 국가가 나서서 문ㆍ사ㆍ철은 물론이고 종교와 민속, 음악, 회화, 건축 등 제반 영역에서 역대의 관련 저술과 유산 등을 정리하고 해석하며 이를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여러 언어로 국제적으로 발신하는 사업에 장기적으로 큰돈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음이 그래서 이해된다. 우리에게도 중국 못지않은 반만 년 가까운 유구한 역사가 있다는 자부심에 적잖은 생채기가 가해지는 대목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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