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피의 맛과 향에 눈뜨다

<35> 커피의 나라 (하)
호찌민 시내 주택가에 자리잡은 커피 전문점 '96B 익스페리먼트'에서 한 직원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달랏에서 커피소농과 계약 재배를 통해 공급받은 생두를 직접 가공해 판매하기 때문에 이 커피숍은 다른 커피점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내고 있다. 커피 본래의 맛과 향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베트남에는 이 같은 소규모 커피숍 창업도 늘고 있다.

달달한 농축 연유를 탄 연유커피, 계란 노른자를 띄운 달걀커피 외에도 코코넛, 요거트, 아보카도, 옥수수와 섞은 커피들이 주름잡는 베트남이지만, 이곳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우후죽순 등장한 커피 프랜차이즈가 베트남 사람들을 커피 본래의 맛과 향에 눈뜨게 한데 이어, 최근에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소규모 커피숍 창업에 나서고 있다. 달랏 등 고산지대 커피 소농과 계약 재배를 통해 생두를 공급받고, 이를 직접 가공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소규모 커피숍 개업 러시

호찌민 시내 중심(1군)에 커피 체험 카페 ‘96B Experiment’를 운영 중인 하 나(34)씨도 이 같은 창업에 나선 경우. 달랏 커피 생산 농가에 최신 건조시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공급받는 생두의 품질을 끌어올린 게 핵심이다. 수년 동안 축적한 로스팅 기술로 만든 원두를 직접 팔거나, 이를 이용해 커피를 파는 방식이다.

그는 “특별 생산 관리된 아라비카 커피는 일반 생두보다 3배 가량 높은 ㎏당 20만동 수준이고, 여기서 다시 로스팅 과정을 거친 원두도 2, 3배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고 말했다. 또 “가공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는 소규모 커피 전문점 개업이 요즘 러시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만든 원두를 갈아서 내린 커피 한 잔 가격은 스타벅스(5만5,000동ㆍ중간사이즈)보다 비싼 8만동에 팔린다.

하지만 여전히 현지인들에게는 이 정도도 부담되는 가격이다. 그래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출 비율은 높지 않다. 원두 판매,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시내에 묵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커피투어’를 병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는 응우옌(22)씨는 “베트남 커피 산업의 전망이 밝아 다니던 대학(IT전공)를 그만두고 이 길로 들었다”며 “경험을 쌓은 뒤 나만의 카페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직접 로스팅 하는 커피숍이 늘고는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 커피숍은 외국에서 들여온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산업연구원(VIRAC)에 따르면 2016~2017년 베트남이 수입한 커피(원두)는 약 100만포대(6만톤)에 이른다. 전년 대비 36만포대가 늘어난 것인데, 비율로 50%에 달한다. 이 수입 커피(원두) 가격은 베트남이 생두로 수출한 가격보다 2, 3배가량 높다.

커피 수입하는 ‘생산 대국’

세계 2위 커피 생산 대국이지만 베트남이 이처럼 적지 않은 커피를 수입하는 이유는 가공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호찌민시 외국인 밀집지에 자리잡은 한 커피점 관계자는 “베트남 업체에서 공급 받은 원두는 품질이 고르지 못해 맛이 들쭉날쭉하다”며 “이탈리아에서 가공된 원두를 받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세관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해 이탈리아로 12만5,000톤, 약 2억7,146억달러어치의 커피(생두)를 수출했다. 이렇게 수출된 생두가 로스팅 과정을 거쳐 원두로 수입될 때 몸값이 10배 이상 뛰기도 한다는 게 현지 업계의 이야기다.

VIRAC은 베트남의 원두커피 수입 증가 원인으로 ▦베트남 내 커피 프랜차이즈들의 증가와 함께 ▦로스팅 커피 소비 급증을 꼽았다. 미국 농무부(USDA)가 작년 12월 발표한 2017-2018 시즌 베트남 커피시장 보고서도 올해 베트남 내 커피 소비는 4%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은 원두뿐만 아니라 생두를 수입하기도 한다. 인근의 라오스, 캄보디아는 소득수준이 워낙 낮아 커피 소비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곳에서 저렴하게 수집한 커피 생두는 자연스레 베트남으로 모이게 된다. 이들 국가와 가까운 접경지의 베트남 커피농들은 이 커피를 수입해 자신이 생산한 커피와 섞어 판매하기도 한다.

고급 원두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공급이 달리자 로스팅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들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원두 공급업체 ‘메리드 빈’의 판매 매니저 푸엉 투이씨는 “계약 재배를 통해 엄선한 생두를 특화된 장비와 기술로 가공해 원두커피를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또 “우리 원두커피는 전국으로 공급된다.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자체 기술력으로 가공 생산한 원두가 인기를 끌자, 이를 발판으로 같은 이름의 커피숍도 만들어 점포 수를 늘리고 있다.

베트남 달랏의 한 마을에서 재래식으로 건조되고 있는 커피. 베트남 정부는 가공시설 현대화, 가공기술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커피 소비 시장에서 ‘단순 커피 생산 노동자’ 역할에 머물고 있는 베트남 커피산업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생산량 줄어도 좋다는 정부

커피 본래의 맛과 향에 눈을 뜬 베트남 국민, 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커피를 수출한 뒤 다시 수입을 하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베트남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커피 주산지의 핵심도시인 달랏에서 ‘베트남 커피 축제’를 여는가 하면, 더 이상 커피 증산 정책을 고수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축제 일환으로 열린 베트남 커피산업 관련 한 세미나에서 응우옌 쑤언 끄엉 농업농촌개발부 장관은 “가공 기술, 브랜드 가치가 낮아 베트남은 세계 커피 시장에서 ‘단순한 커피 생산 노동자’에 머물고 있다”고 탄식했다. 베트남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커피 재배 면적을 늘리지 않는 한편, 수익률이 낮은 농장의 경우 폐업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공 기술 향상에 정책력을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에 따르면 베트남 커피 농장 면적은 2016년 말 현재 제주도(1,850㎢)의 3.5배(6,450㎢)에 이른다. 이곳에서 연평균 160만톤이 생산되며, 이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특히 ㏊당 커피(건조된 생두) 생산량은 2.5톤으로,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할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달랏ㆍ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트남 청년들이 소수민족 중 하나인 크호족 농부들이 커피를 재배하는 사진을 무료로 찍어 액자에 넣어주고 있다.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커피 값을 제대로 받으려는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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