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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는 왜 ‘피노키오’가 될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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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는 왜 ‘피노키오’가 될 수밖에 없었나

입력
2018.01.31 09: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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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인에 포위

김현미 등 강성 장관들

‘김동연 부총리 패싱’ 각개약진

2. 디테일의 빈곤

보수적 관료의 한계…

개혁적 문 대통령 설득 못해

3. 정책 조정 실종

‘투톱’인 장하성 정책실장과

역할분담 불분명해 혼선 가중

‘판자촌 출신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국무회의ㆍ업무보고ㆍ경제장관회의ㆍ국회 일정 등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과 창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일자리안정자금’을 알리기 위해 광화문과 영등포 거리를 누비기도 한다.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갈등을 풀기 위해 미중과 상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가상화폐와 강남집값 등 주요 경제 현안을 둘러싼 정부의 혼선과 엇박자, 패싱(핵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 부총리가 특정 현안의 입장을 정리해도 다른 장관이 딴소리를 하고 청와대나 여권에서 다른 얘기가 나오다 결국 김 부총리가 그 쪽으로 끌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취임한 김 부총리는 왜 자꾸 말을 바꾸는 ‘피노키오’가 된 것일까? 다른 장관들은 왜 ‘경제사령탑’이 교통 정리한 사안에 토를 달까?

①지분 없는 부총리, 정치에 포위되다

가장 큰 원인은 문재인 정부 출범에 딱히 기여한 바 없는 김 부총리가 정치인 장관과 정치적 이슈에 이중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선 주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수도권 3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부산 유력 정치인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재선 출신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내각 곳곳에 포진해 있다.

김 부총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각개 약진하면서 언론플레이에도 능한 정치인의 특성상 이들은 사전 조율이 없거나 때론 반대되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최근 김현미 장관이 재건축 연한 연장을 언급하고, 그 직후 김 부총리가 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게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7월엔 김부겸 장관이 김 부총리 면전에서 “재정당국이 내놓은 재원조달 방안이 석연치 않다”고 문제를 삼기도 했다. 개성 강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튀는 발언도 김 부총리에겐 부담이다.

당면한 현안이 모두 국회 논의나 여론 공론화가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란 점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금 문제는 민심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결국엔 정권 재창출과 직결된 민감사안이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첫 단추인 최저임금 문제도 야당과 보수층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김 부총리가 현실을 고려해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해도, 부처 단계에서 대중영합적인 사안들이 침투하는 일이 자주 보인다”고 말했다.

②디테일의 빈곤, 관료 출신의 한계

사실 이러한 한계는 김 부총리가 취임할 때부터 예견됐던 문제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문 대통령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월 1회 대통령을 독대하겠다는 것은 김 부총리의 역할이 얼마나 미약한지 보여주는 반증”이라며 “가장 중요한 국정 분야인 경제와 일자리를 다루는 부총리라면 대통령과 매주ㆍ매일 만나거나 통화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김 부총리가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구체적 내용을 내 놓지 못했고 대통령도 아직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보수적 관료 출신의 한계라는 분석이다.

‘디테일’의 문제에선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 위원장과 비교하는 시각도 없잖다. 재벌개혁 분야에선 김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상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한 경제부처 간부는 “김 위원장이 대통령 신임을 얻는 이유는 재벌개혁 및 공정거래 분야에서 20여 년간 전문가로 활동하며 쌓은 디테일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③안 보이는 정책실장, 경제 투톱 교통정리부터

그렇다고 원인이 김 부총리에게만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전통적으로 ‘경제의 투톱’으로 인식돼 온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지부터 정해져야 한다. 청와대에 ‘시어머니’가 너무 많은데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조정 역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잖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경제현안마다 부처 입장이 달라 막후에서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정책실장의 조율 기능이 약하다 보니 입장 차이가 자꾸 먼저 드러나 엇박자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30일 뒤늦게 부처 장ㆍ차관을 소집해 워크숍을 연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관료가 아닌 (학자 출신) 비평가가 모인 청와대 위주로 끌고 가다 보니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라며 “현장의 목소리와 관료들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 입장에선 언론과 야권도 야속하다. 언론은 틈만 나면 ‘김동연 왕따’를 들먹이며 존재감을 문제 삼고, 야권은 정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불협화음마저 ‘실정’으로 몰아세운다. 김 부총리는 28일 밤11시43분 페이스북에 “기사의 제목이 취지와 다르게 표현됐다”며 장문의 글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백웅기 상명대 총장은 “부총리가 관계부처와 소통하기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직접 해명을 하는 것은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김동연 카드를 최대한 살리려면

경제 문제에서 부총리의 영(令)이 서지 않는 것은 개인 차원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나라 전체 경제 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시장이 부총리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반복되면 정책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전문가와 전직 관료들은 결국 ‘경제는 부총리가 사령탑’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임명권자(대통령)가 부총리에게 계속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김 부총리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컨트롤타워를 흔드는 게 문제”라며 “전문성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정치인보다는 동서남북을 다 보고 합리적 판단할 수 있는 부총리가 더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철학과 다소 이질적 색채의 김 부총리를 더 잘 활용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직후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의 추천을 받아 이규성 재무장관을 중용하고, 보수 성향인 이헌재씨를 금융감독원장에 기용한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책 조정과 조율의 최종 책임은 청와대 정책실장보다 서열이 높은 부총리 스스로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견제ㆍ균형이 이뤄지는 과정이 엇박자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의견수렴으로 보여지게 하는 것 또한 부총리의 몫”이라고 밝혔다. 백 총장은 “어렵게 주어진 독대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며 “가상화폐나 부동산 등 당면과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김 부총리가 좀 더 소통을 주도하고 적극적인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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