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한 기존 자금으로만 계속 거래…신원도 공개 안 돼
실명제 시행 첫날 기존 거래자 노숙계좌로 버티면서 은행창구 한산
가상화폐(암호화폐·가상통화) 거래 실명제가 시작된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은행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화폐(암호화폐·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거부하는 일명 '노숙계좌'가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노숙계좌는 가상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신규 투기수요 진입 차단을 노리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의 성패를 가늠할 중대 변수이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은 가상화폐 실명확인을 거부하는 계좌를 일명 노숙계좌로 부른다.

금융당국이 실명제라는 지붕 아래로 가상화폐 거래를 모으려 하지만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버티는 이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30일부터 시행된 실명확인 입출금서비스의 요체는 거래자 계좌와 가상화폐 거래소의 계좌가 동일한 은행일 때에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것이다.

거래소 거래은행에 계좌가 있는 고객은 거래소에서 온라인으로 실명확인 절차만 거치면 되지만, 거래소의 거래은행에 계좌가 없는 거래자는 해당 거래은행에 계좌를 신규로 개설해야 한다.

가상화폐 거래소 거래 은행과 동일한 은행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용자가 받는 페널티는 입금을 제한당하는 것이다. 출금은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기존에 거래에 활용되던 가상계좌 서비스는 더 이상 가상통화 거래에 활용할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에 가상계좌로 입금을 완료한 자금에 대해선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다. 이 자금은 투자자가 은행이 거래소에 부여한 가상계좌를 경유해 거래소로 이미 들여보낸 자금이므로 금융당국이나 은행의 통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기존 가상계좌 서비스가 중단됐다는 것은 계좌로 입금이 정지됐다는 의미일 뿐 이미 거래소로 넘어간 자금에서 거래가 발생하든 하지 않든, 하루에 몇 번이 발생하든 금융당국과 은행이 알 길이 없다.

쉽게 말해 A라는 투자자가 실명확인 입출금서비스 시행 전에 가상계좌를 통해 거래소에 3천만원을 입금한 후 이 자금을 활용해 가상화폐 거래를 계속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실명확인에 응하지 않고 있으므로 신원을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조세포탈이나 자금세탁 등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있는 자금이다.

업계에선 실명확인을 거부한 채 이런 노숙계좌로 선회한 사람들이 수십만 혹은 100만명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명확인이 시작된 30일 은행 창구가 그리 붐비지 않았던 것도 기존 투자자들이 추가 입금만 제한되는 노숙계좌 상태로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가상화폐 시세가 좋지 않고 전세계적인 규제 분위기, 일본에서 거래소 해킹 등 악재가 돌출하자 추가로 자금을 넣기보다 기존에 넣은 자금으로 때를 기다리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해석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계좌를 통해 이미 거래소로 들어간 자금은 인터넷상에서만 존재하는 자금인 만큼 마땅히 통제할 방안이 없다"면서 "다만 이런 계좌로는 입금이 제한되고 출금만 가능하므로 점차 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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