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토인비. 인류 문명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한 영국 역사학자다. 1889년 태어난 그는 1970년 일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와의 ‘21세기를 여는 대화’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옥스포드대 동창들을 언급했다. 20대 초ㆍ중반 초급 장교였던 토인비의 많은 동창들이 희생됐다는 내용이다. 영국 이튼스쿨(13~18세 교육ㆍ한국의 중고교 과정) 통계도 1900년 전후 출생 졸업생 20%가 1차대전에서 숨졌다고 전한다. 토인비 세대의 불행은 누구 잘못도 아니다. 단지 징집 연령이었을 때 전쟁이 터진 게 이유다.

2018년 현재, 한국의 가장 우울한 세대는 20~30대라고들 말한다. 그들은 “꿈을 펼칠 일자리가 없다”고 외친다. 문재인 대통령도 화답했다. 지난 25일 장관들을 질책하며,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버려라. 청년들 목소리를 더 듣고, 그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기획재정부도 부총리와 1급 이상 간부 전원이 참여하는 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조만간 시장원리를 뛰어넘는 강력한 대책이 나올 판국이다.

젊은 세대를 향한 대통령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애정이 크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의사에게 정말 필요한 건 환자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지 못하면 사랑은 의미가 없다.

현 상황에서 장관들이 대통령 요구를 실현시키는 건 기적이다. 당위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래 보인다. 우리 사회는 감성과잉이다. 정치인들은 문제가 터지면 구조나 정책만 탓한다. 표를 쥔 유권자는 욕하지 않는다. 각자 몫의 책임은 얼마 안되지만, 모두 합치면 문제의 꽤 큰 부분을 설명하는데도 시민은 늘 잘못이 없다. 선거에서 표를 던질 사람에겐 아무 요구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따져보자. 대통령은 ‘없다’는 데, 한국에 정말 일자리가 없나.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의 수 십 만개 일자리는 구인난 속에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청년들이 좌절하는 ‘원하는 일자리’ 부족에는 구조적 측면도 있겠지만, 비현실적 꿈을 꾸는 젊은 세대 탓일 수도 있다. ‘대학 나온 놈이 그런 곳 다닐 바에 그만두라’는 부모 탓도 꽤 있다.

당위적으로도 그렇다. 모든 젊은이들이 현실에 좌절하는 것도 아니다. 좌절 못지 않게 낮은 단계부터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친구들이 부모에 의지할 때 일본, 동남아로 나서는 이들도 많다. 지난 달 ‘신 남방정책’ 관련 취재에서 씩씩한 한국 청년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 동료와 함께 중소기업에서 꿈을 찾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정부가 나서 누군가 도와야 한다면, 그 대상은 먼저 행동하는 시민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다면, 한 순간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세금이 떠받히는 기교일 뿐이다.

이쯤 되면 ‘그럼 어쩌라는 거냐’는 질문에 뭔가 내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영화로 소통한다. ‘1987’,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물색했더니, 생뚱맞지만 ‘브루스 올 마이티’라는 영화가 눈에 띈다. 이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인생 탈출구를 찾는 주인공(짐 캐리)이 기적을 호소하자, 하느님(모건 프리먼)이 말한다. “진짜 기적은 이런 것이다. 싱글 맘이 ‘투잡’을 뛰면서 아이도 잘 돌보는 것, 10대가 유혹을 뿌리치고 공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안에 그 힘이 있는질 모른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불행한 세대를 설득하는 게 먼저다. 부모들에게 ‘자녀 인생은 그들이 몫이니 맡겨두라’고 권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시대 ‘불행한 세대’의 문제 해결에는 대통령의 관심도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적을 이뤄낼 그들의 힘을 이끌어내는 게 먼저다. 조철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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