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허세 대신 현실을 노래… 요새 K팝은 ‘아이돌’ 아닌 ‘아이들’

알림

허세 대신 현실을 노래… 요새 K팝은 ‘아이돌’ 아닌 ‘아이들’

입력
2018.01.30 04:40
22면
0 0

‘청춘 대변인’ 방탄소년단 이후

가사에 성장통ㆍ저항을 담아$

SNS로 일상 보여주는 탈신비와

수시로 믹스테이프 공개도 특징

“연습실의 거울을 보면서 매일 묻네”. 신인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낸 노래 ‘글로우’에서 연습생으로서 데뷔를 꿈꾸며 흘린 땀과 혼란을 노래한다. 팀의 리더인 방찬은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JYP)에서 7년 동안 연습생으로 지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맞는 것일까. 스트레이 키즈의 앨범 ‘믹스테이프’는 불안한 청춘이 쓴 일기장 같다. 아홉 멤버들의 짠내 나는 연습생 풍경(‘헬리베이터’ ‘4419’)과 틀에 박힌 교육,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Grrr 총량의 법칙’ ‘스쿨 라이프’ ‘어린 날개’)들로 가득하다.

스트레이 키즈의 등장은 ‘아이돌 명가’ JYP의 변화를 보여준다. JYP가 앞서 내놓은 남성 아이돌그룹 2PM(2008), 갓세븐(2014)과 스트레이 키즈는 결이 180도 다르다. “그녀의 입술은 맛있어”(‘10점 만점에 10점’ㆍ2PM 데뷔곡)라며 남성성을 진하게 어필하거나 “나만 보면 자지러져 놀라”(‘걸스 걸스 걸스’ㆍ갓세븐 데뷔곡)라며 스웨그(Swagㆍ뻐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폼생폼사’에서 ‘청춘서사’로

손에 잡히지 않는 달콤한 사랑 얘기와 출처를 알 수 없는 허세 대신 내 현실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또래의 고민을 살핀다. 스트레이 키즈를 비롯해 청춘의 서사를 앞세운 신예 댄스 그룹이 K팝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인 그룹 타깃은 “별이 되고픈 아이는 오늘도 조급함이 다급해”라며 절벽으로 자신을 몰아가며 데뷔를 준비한 고충을 담은 노래 ‘어웨이크’를 데뷔 앨범 ‘얼라이브’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지난 24일 출사표를 던졌다. 10~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감 넘치는 가사로 곡에 대한 몰입을 높이려는 시도다.

‘폼생폼사’에 집중했던 K팝 서사의 축은 최근 들어 급격하게 성장통과 저항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방탄소년단(BTS)이 ‘청춘의 대변인’ 전략으로 10~20대를 공략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뒤 달라진 K팝의 풍경이다. 변화는 남성 그룹에 두드러진다. “우리(청춘)의 얘기를 내세우면 남성 팬까지 사로잡아 팬덤을 키우는 데 유리하기 때문”(김성환 음악평론가)이다.

데뷔 앨범 발매 전 습작 공개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K팝 제작 시스템에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가사뿐 아니라 ‘믹스테이프(Mixtapeㆍ기존 곡을 리믹스해 만든 비정규 작업물)’ 발표 후 정규 앨범 발매’라는 데뷔 방식까지 주류 아이돌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콘텐츠 노출을 최소화해 정규 앨범의 희소성을 강화하는 대신 데뷔 전부터 ‘학교의 눈물’ 등 습작을 공개해 팀의 음악색을 다양하게 보여줬던 방탄소년단의 전략은 요즘 K팝 시장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스트레이 키즈가 낸 ‘믹스테이프’는 일종의 습작이다. 힙합 신에서는 래퍼들의 믹스테이프 공개가 일반적이지만, 3대 아이돌 기획사에서 1집 발매에 앞서 신인 그룹의 믹스테이프를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유통하기는 처음이다.

올해 데뷔 3년째인 차세대 한류 그룹 세븐틴도 믹스테이프를 수시로 공개하며 팬들의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한다. “콘텐츠의 희소성으로 신비로움을 내세우기보다 멤버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자유분방함을 강조해 팬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창작자로 호감을 사는 데 믹스테이프를 적극 활용”(박준우 흑인음악 평론가)하는 게 요즘 K팝 그룹의 특징이다.

셀프 영상 촬영 배우는 연습생들

중ㆍ소 기획사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활용 DNA’ 따라잡기에 혈안이 됐다. 대형 기획사의 후광 없이 적극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세력’을 넓힌 사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JTBC 오디션프로그램 ‘믹스나인’에 남성 연습생들을 출연시킨 H 기획사의 대표는 “회사 연습생들에게 셀프캠 촬영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휴대용 촬영 장비로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찍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 유통할 수 있는 웹 리얼리티 콘텐츠 개발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다.

급부상한 ‘DㆍI ㆍY’ 아이돌

방탄소년단 이후 등장한 그룹들의 화두는 ‘D ㆍI ㆍY’로 압축된다. 일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온라인 콘텐츠(탈신비주의ㆍDemysticism)로 팬들과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고, 비정규 음원(믹스테이프ㆍIrregular content)을 수시로 공개해 팬들과의 음악적 친밀도를 높인다. 청춘 이야기(Story of youth)로 현실을 노래하거나 성장 서사를 어필해 동질감을 준다. 새 유전자를 지닌 K팝 그룹의 부상이다.

K팝 시장의 변화는 ‘아이돌의 아이들화’란 문화 변동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아이들화’란 신화적 대상으로서가 아닌 ‘또래 문화’로 K팝 그룹을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빅뱅 등 앞선 아이돌 그룹과 방탄소년단 이후 보이그룹의 가장 큰 차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팬들이 직접 멤버를 뽑는 ‘프로듀스 101’과 워너원 열풍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성공으로 K팝 시장에서 아이돌의 아이들화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사회적으론 요즘 젊은이들이 기댈 곳이 없어 제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K팝 아이들 그룹’에 더 열광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