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산문집 모두 10만부 이변...박준 시인과 김민정 편집자 스토리

*‘시인 아이돌’로 불리는 박준
“문학 가치는 판매량보다 문학성
독자들은 이야기에 목말라 있어
여백에 메시지 담는 詩 쓰려해요”
*이변을 함께 만들어낸 김민정
“박준 책 기획ㆍ편집하고 제목 지어
어렵지 않은 단어로 감수성 담아
2030세대 독자가 읽는 이유죠”
시인인 김민정(왼쪽) 난다 대표와 ‘창비’ 편집자인 박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자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위해 26일 한국일보를 찾은 김 대표의 핸드백엔 교정 원고와 책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박 시인은 “제가 만든 김현 시인 시집이 곧 나오는데 잘 부탁한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문단의 가장 뜨거운 이름, 1983년생 박준. 2008년 등단한 시인이자 출판사 ‘창비’ 편집자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문학동네)는 10만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난다)은 출간 7개월 만에 12만부 팔렸다. 주요 독자인 2030세대는 박준의 책을 ‘우아한 활자 굿즈’로 소비한다. 열심히 읽고 반한 구절을 사진 찍어 공유한다. 겨울 문단에 훈풍을 몰고 온 ‘박준 현상’이다.

1999년 등단한 시인이고 출판사 난다 대표이면서 ‘문학동네 시인선’의 스타 편집자인 1976년생 김민정. 그의 이름 없이 ‘박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당신의…’와 ‘운다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제목을 지었다. ‘운다고’의 절묘한 표지 그림을 고른 것도 그다. 서로를 “누나”와 “준이”라고 부르는 두 사람을 26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책도, 문학도 죽어 간다는 시대에 시와 시인을 내세워 이변을 만들어 낸 둘에게 ‘마법’을 물었다.

-두 책 모두 제목이 신의 한 수 아니었나요.

박준(박)=“책을 많이 파는 게 목적이었다면 쓰지 않았을 제목이죠. 10자 넘어가면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이 잘려요(웃음). ‘문인들의 작명소’ 같은 누나를 그냥 믿었어요.”(박범신 소설 ‘은교’,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등의 제목이 김 대표 작품이다.)

김민정(김)=“지난해 식목일에 ‘운다고’ 원고를 받았어요. 출력한 원고와 형광펜을 들고 욕조에 들어갔죠.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여기 줄 긋고 바로 욕실에서 나왔어요. 표지에 쓸 기드온 루빈의 그림을 떠올리고 ‘끝났다’고 확신했죠. ‘당신의’ 제목은 비문이라며 별로라고 하는 문인이 많았어요. 독자들은 알아봐 주셨죠.”

-아이돌그룹 엑소의 세훈이 ‘운다고’의 한 페이지를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렸고, 드라마에도 책이 나왔어요. 마케팅이었나요.

김=“그런 쪽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도 놀랐어요. 세훈 사진이 뜬 날 책 주문량이 4,000부를 넘겼죠.”

박=“독자들이 광고를 얼마나 잘 알아보는데요.”

-시집 한 권을 낸 시인의 산문집이 왜 그렇게 많이 읽힐까요.

박=“책은 저의 ‘실패기’예요. ‘나 이런 거 해 봤어’가 아니라 ‘나도 그랬어’라는 보편성의 경험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김=“준이 시집을 기다리며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죠. 보통 에세이와 달리 시의 호흡으로 만들었어요. 분량이 원고지 400장이 안 돼요. 일부러 텁텁한 종이를 썼고요. 준이 글은 구절구절에 울림이 있어요. 어렵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 가볍지 않게 감수성을 건드려요. 슬픔, 이별, 죽음을 얘기하면서도, 사랑과 희망이 있으니 살아가자고 얘기하죠.”

-시인의 첫 시집으론 이례적으로 많이 팔렸어요. ‘박준이 시 바람을 일으켰다’고도 하던데요.

김=“요즘 독자들은 먹기 좋게 잘라 주는 책을 원해요. 독서에 시간을 쓰기에는 삶이 너무 고되니까요. 다행히 문학의 성역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요. 특히 시를 찾아 읽는 고정 독자층은 튼튼한 편이에요. 이야기가 쭉쭉 이어지는 쪽을 선호하는 소설 독자와 달리, 시 독자는 난해함을 각오하고 접근해요.”

박= “문학 독자들은 이야기에 여전히 목말라하는 사람들이에요. 좋은 시는 대하소설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요. 짧은 글이 편해서 시를 읽는 사람은 없겠죠. 시는 연과 행이 끝나도 여백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서의 시간을 연장해요. 그런 시를 쓰려 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든든한 남매"라 부른다. 홍인기 기자
-‘시인 아이돌’이라고 불릴 정도의 인기가 부담스럽진 않나요.

박=“다음 시집을 퇴고하고 있어요. ‘덜 팔리면 어쩌지’ 같은 부담은 없어요. 시집은 상품이지만 시는 문학이에요. 문학의 가치는 문학성에 있어요. 스스로 문학성을 갱신하지 못할까 두려워요. 시집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이 저를 바꾸진 못해요. 시집 인세는 정가(8,000원)의 10%니까, 연봉으로 따지면 2,000만원도 안 되는 걸요. 장담하건대, 돈 때문에 시를 쓰는 사람은 없어요.”

김=“박 작가가 잘 된 건 출판계 전체에 고무적인 일이에요. 첫 시집을 내려는 시인들의 공간을 만들었고, 출판사들의 걱정을 덜어줬어요. 문학이 뭔지 다시 보는 기회도 만들었고요. 준이에게 고마워요.”

-많은 사람에게 시는 그래도 어려운 존재인데요.

김=“주눅 들지 말고 취향을 만드세요. 책 사이에서 길을 잃고 무수히 많은 실패와 낭비를 해야 해요. 시에서 주제나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요.”

박=“문학은 물음표로 다가오는 거예요. 왜 좋은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좋은 겁니다. 사랑처럼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려는 강박을 갖지 마세요. 아름다운 물음표로 남겨 두세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박혜인 인턴기자(중앙대 정치국제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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