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청소노동자 5명의 이야기
2015년 1월 23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바닥을 닦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통날’은 매일이 새롭게, 고달팠다

“우리가 배운 게 뭐가 있어. 살림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할 수 있는 일이 청소밖에 더 있나. 꼭두새벽에 집 나서서 종일 뼛골 빠지게 일하고 퇴근해선 또 밀린 집안 일…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지 뭐.”

40대에 청소 일을 시작해 올해로 예순을 맞은 고영자(60)씨는 16년째 오전 4시 20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기다린다. 잠든 서울을 깨우는 첫차는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 이 버스에 오른 승객들 중 열에 아홉은 모두 고씨와 같은 청소 용역 노동자다. 자꾸 감기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연세대 백양로에 들어서면 6시도 되지 않았다. 규정상의 출근 시간은 7시지만 정각에 맞춰 나올 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씨만 해도 첫 수업시간인 9시 전에 34개의 강의실을 모두 치워야 한다. 3시간도 빠듯하다. 한창 관리 반장의 서슬이 퍼랬을 시절엔 오전 5시 50분만 넘겨도 “집이 천리 밖이냐, 일할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는 핍박을 들어야만 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청소노동자의 휴식공간. 박서강 기자

9시 학생들의 첫 수업이 시작되면 10시까지는 늦은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이다. 하지만 지친 몸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래 봤자 계단 밑의 쪽방이 전부다. 그마저도 10시 이전엔 냉난방이 되질 않아 여름엔 찜통, 겨울엔 얼음장이다. 옷을 껴입으면 그럭저럭 견뎌지는 추위보다 더 끔찍한 건 고물 선풍기조차 소용없는 여름의 습기다. 주영화(64)씨는 “우리가 청소하는 새벽 시간은 중앙 냉난방 관리자가 출근하기도 전”이라며 “오전 청소를 끝내고 나면 땀으로 온몸이 푹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지만, 샤워는커녕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휴게실에서 잠시 숨 돌리는 게 전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교수 연구실이 부럽다. 언제든 에어컨을 켤 수 있는 ‘리모컨’이 있으니까.

쥐들이 뒹구는 쓰레기통도 척척 비워낼 만큼 비위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들이지만, 날 때부터 비위가 강했을 리는 없다. 2007년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던 윤순옥(65)씨는 반년 가까이 밥 한 술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체중은 하루가 다르게 줄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곳은 화장실. 오물이 묻은 속옷을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쑤셔놓고 간 건 약과다. 뚜껑 위에 대변을 본 엽기적인 경우까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이야 말라붙은 오물을 맨손으로 긁어내 처리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이토록 궂은일의 가치를 외면하는 현실과 맞닥뜨릴 때면 한없이 작아진다.

쉴 새 없이 복도와 화장실을 오가며 더러워진 곳을 청소하다 보면 어느덧 오후 4시. 직장에선 퇴근이지만, 주부로서 ‘두 번째 출근’을 하는 시간이다.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짊어지느라 손목은 시큰하고 허리가 쑤시지만 밀린 빨래를 해치우고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이 시간뿐이다. 저녁밥을 안치고 나면, 하루 중 마지막 일과는 집 청소. 그야말로 청소로 시작해 청소로 끝나는 하루다. 남들보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길다. 그래서 고달프다. 늘 같은 ‘보통의 날들’인데도, 죽을 것 같이 힘든 건 매일이 새롭다.

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인간 이하의 삶, 이렇게는 살 수 없다

2008년 1월 26일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직장 공간에서의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 이하’였다. 단순히 일이 고되서, 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내이자 어머니의 무거운 책임까지 함께 져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매달 손에 쥐는 돈은 생계를 떠받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관리감독자의 일상적인 폭언은 그들의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아무리 아파도 쉴 수 없었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여겨지는 무법 천지였다.

13년 전 가세가 기울며 생계 전선으로 나오게 된 이경자(66)씨의 첫달 월급은 63만원.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였다. 관리부장의 명령으로 토요일까지 출근했지만, 연장 수당은 없었다. 회사는 계약 철마다 노동자들의 도장을 걷어가 임의로 계약서에 찍은 후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손에 쥐어지는 돈 말고는 그 어떤 계약 조건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회사는 최저시급을 맞추려 꼼수까지 쓰기 시작했다. ‘퇴직금을 미리 지급한다’는 핑계로 다달이 쪼개 임금에 보탠 것이다.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벼룩의 간을 탐내는 사람은 도처에 가득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임금님’ 못지 않았다던 관리 부장은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담뱃값과 커피값을 걷어 갔다. 은근 슬쩍 다가와 덕담처럼 건넨 “힘든데 일 좀 대강대강 혀”라는 말은 “편의를 봐 줄 테니, 촌지를 자진 상납하라”라는 뜻이었다. 당시 반장에게 뒷돈을 건네지 않았던 윤순옥씨는 과학관으로 내몰렸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유배지’로 일컬어지던 곳이었다. 횡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청소 일을 도우라”는 등 노동자들을 제 수족처럼 부렸다. 노동자들이 따지고 들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 “주제에 따박따박 말대꾸다”라는 폭언이 돌아왔다. 생리통으로 보건휴가를 쓰겠다는 한 노동자에게는 “다 늙어서 무슨 생리를 하냐, 못 믿겠으니 확인 좀 해봐야겠다”라며 치마를 들추려 했다.

모두가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2008년 1월, 그들은 학생들과 손을 잡고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방해 작전이 펼쳐졌다. 관리 부장들은 한 건물에 한명씩 ‘첩자’를 심어서 누가 학생들과 만났는지 경쟁적으로 일러바치도록 종용했고, 걸리는 사람은 누구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일방 통보했다. 관리 부장의 만행을 폭로해 노조 결성의 발판을 마련했던 정막심(70)씨는 “목숨까지 바쳤던 투쟁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그들에게 내일 당장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곧 목숨의 위협과도 같았던 것. 하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수 있다’는 공포보다 ‘인간답게 대접받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컸다.

그해 1월 26일 32명의 조합원으로 꾸려진 공공노조 연세대 분회는 학교와 용역업체의 감시를 피해 현재의 신촌 아트레온 건물에서 공식 출범했다. 노조 설립을 도왔던 학생들은 그 후로도 함께했다. 2012년 출간된 ‘빗자루는 알고있다(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한 2000일의 기록)’는 노동자의 권리를 향한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3억 5000만원의 체불임금을 받아냈고 횡포를 부리던 용역회사도 바꿨다. 학교 안에 그렇게 많은 쪽방이 있는 줄 몰랐다는 부끄러움에서, 어머니 같은 분들에 대한 작은 연민에서 출발했지만 인간답게 일할 권리는 결국 우리 모두를 돕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18일 오후 연세대 본관에서 농성중인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학교측의 인력감축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퇴보의 징후 앞에 다시 꺼낸 ‘붉은 조끼’

그렇게 지난 10년은 한걸음씩 내딛는 진보의 날들이었다. 용역 노동자의 정년 축소를 막았고, 생활임금 단체협상에 나섰다. 바른대로 따져서 당당하게 이겼다. 그들에게만 당연하지 않았던 권리를 되돌려 받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강한 퇴보의 징후 앞에 놓여 있다. 지난해까지 연세대에서 일하던 환경미화직 16명이 정년퇴직을 했는데 충원은 단 1명이었다. 15명이 빈 자리에 용역업체가 채용한 아르바이트생 5명이 들어왔다. 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도 부족했던 일을 ‘3시간짜리 파트타임 알바’가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청소노동자들이 퇴근한 오후 7시쯤 건물을 돌며 쓰레기를 걷어가는 것뿐. 곳곳에서 지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지만 학교는 묵묵부답이다. 손이 모자라 넘치는 일은 다른 노동자들의 어깨 위에 얹혀질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이 나온다.

그래서 빗자루 대신 다시 피켓을 들었다. 평소대로였다면 한창 강의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먼지 섞인 땀을 흘릴 시간, 이들은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붉은 조끼를 입은 채 캠퍼스로 나섰다. 학교측의 말문을 열기 위해 1월 16일 본관을 점거했다. 4일째 되던 날, 학교는 본관 로비 난방과 지하 1층 화장실의 온수를 끊었다. 학교를 향한 세상의 비난이 쏟아졌고 난방과 온수는 4일 만에 슬며시 다시 켜졌다. 가까스로 용기를 냈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디찬 바닥의 냉기는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다짐한다. ‘인간답게 일하자’

“사람을 키우는 학교에서 가장 천대하는 게 사람이야, 돈 없는 사람.” 이들은 반복해 묻는다. 사람의 가치가 존중 받지 못하는 이곳에 과연 대학의 자격이 있느냐고.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용역업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연세대는 이미 지난해 7월 인력감축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때까지, 강의실에서만 맴도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할 때까지 이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