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작곡가.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지난 2일 진은숙(57) 작곡가가 상임작곡가와 공연기획자문을 역임하며 12년 동안 몸 담았던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을 떠난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향을 비롯해 국내 음악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서울시향은 최근 몇 년 간 내홍을 겪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서울시향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던 정명훈 지휘자와 아름답지 못한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흔들리던 서울시향에 버팀목이었던 진 작곡가마저 갑작스레 떠난다니, 그의 사임 이유에 이목이 더 쏠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임 발표 이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추측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 역시 최근 몇 년간 특혜 논란과 수익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려 왔습니다. 예술 외적인 요소로 인해 사임을 결심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가 예술과 예술가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 상임작곡가가 특정 오케스트라에서 10년 이상 자리를 지키면 안 되는 걸까요? 객석을 다 채우지 못한 연주회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진 작곡가가 3주 간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혔습니다. 그는 한국시간으로 24, 25일 기자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 형식으로 만든 자신의 글을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실었다고 전해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진실을 거의 다 얘기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가 밝힌 사임 이유는 A4 용지 14장 분량에 이릅니다.

끊임없이 시달려 온 특혜논란

진 작곡가는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부임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공석이 된 공연기획자문 역할도 겸했습니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장기 집권과 고액연봉 수령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또 상임작곡가임에도 서울시향을 위한 곡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진 작곡가는 “서울시향에서의 일이 나에게는 ‘책임’과 ‘의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권력’과 ‘특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자신이 책임과 의무를 다해 활동한 결과가 특혜로 불리는 것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은 아니었을까요. 그는 “세상 사람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며 자신의 연봉과 계약내용까지 직접 공개했습니다.

2006년 영입 당시 상임작곡가로서 그의 연봉은 4만1,000유로(현재 환율로 5,400여만원)였습니다. 이후 8년 간 연봉은 동결됐고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약 5%씩 인상됐습니다. 공연기획자문 역할에 대한 연봉은 6만7,000유로였습니다. 공연기획자문은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악적 이슈를 책임지는 자리인데다 서울시향은 예술감독 자리도 비어있어 그의 책임은 더욱 막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3~4개월은 그 자신도 행정 절차 등에 적응하기 위해 보수를 받지 않았습니다. 두 역할을 겸직하다 보니 상임작곡가 연봉은 다시 10년 전 수준으로 삭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공연기획자문 역할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서울시향에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어서 수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상임작곡가로서 서울시향을 위한 곡을 쓰지 않는다는 지적 뒤에는 복잡한 음악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진 작곡가는 영국 출판사 부시 앤드 호크스와 계약돼 있습니다. 공식적인 위촉 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곡을 써줄 수 없습니다. 2023년까지 작곡 스케줄이 다 차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서울시향을 위한 신작을 위해서는 최소 3,4년 전에 위촉 요청이 들어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일정이 불가능 했습니다. 또 서울시향에는 신작 위촉을 위한 예산도 책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진 작곡가가 10년 이상 상임작곡가로 활동해 명성을 이용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마다 상임작곡가 운용방법은 제각각입니다.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은 3년 동안 상임작곡가의 작품 여러 개를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하고 매해 신작을 위촉 초연합니다. 하지만 상임작곡가 임기가 1년인 악단도 있고 한 작곡가가 20년 이상 한 오케스트라 몸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 안 되는 현대음악의 가치는 없을까

진 작곡가는 상임작곡가의 역할을 한국 청중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젊은 작곡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한국의 음악적 발전을 위해서는 후배 작곡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학창시절 꿈꿨던 것이 그들에겐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시작한 게 현대음악 시리즈인 ‘아르스 노바’입니다. 그런데 이 ‘아르스 노바’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다른 지적 대상이 됐습니다. 진 작곡가는 ‘아르스 노바’가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라 교육 등을 포함한 포괄적 사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작곡가들은 자신이 ‘아르스 노바’에 빚진 것이 많다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위촉 작곡가로 선정된 신동훈씨는 페이스북에서 “아르스 노바는 프로그램이 시작 된 첫 해부터 리딩세션을 통해 국내 젊은 작곡가들에게 오케스트라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교육, 육성 플랫폼이었다”며 “나를 포함하여 동료 작곡가들이 마스터클래스와 리딩세션을 통해 첫 오케스트라 곡을 썼고, 그 곡으로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와 동료들이 진은숙이란 존재와 아르스 노바를 통해 누린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진은숙의 부재는 무엇보다 작곡가를 꿈꾸는 어린 한국의 후배 작곡가들에게 재앙이고 저주”라고까지 덧붙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조현화씨도 “더 젊은 작곡가들에게 아르스 노바에서 제공하던 기회들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젊은 작곡가들은 이미 큰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은 곡을 통해 먼저 가능성을 보고, 그 이후에 규모가 있는 관현악 곡 위촉을 맡겨, 서울시에서 오는 서울시향의 예산이 위촉료로 사용될 때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합리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객석 점유율이 높은, 잘 알려진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현대음악 음악회를 여는 것이 덜 중요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베토벤의 곡을 연주할 때도 비용은 들고, ‘아르스 노바’는 오히려 외국의 현대음악 연주회에 비하면 관객이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쉬운 ‘시향’

사실 이런 지적은 서울시의회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울시향은 서울시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므로 시의회의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점검이 필요하니까요. 진 작곡가 역시 이 부분에 강하게 동의했습니다. 그는 다만 “그 감사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와 별개로 예산을 받아 쓰는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기관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죠.

돈을 받아서 써야 하는 예술단체는 필연적으로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시향을 둘러싼 정치공방 속에서 진정으로 서울시향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진 작곡가가 느낀 허탈감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누군가 무능력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단 이유로 비난 받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고 특출한 성과를 내면, 즉 이 사회에서 ‘튀는 사람’이 되면 여지 없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서울시향이 서울시에서 주는 예산을 받으면서 남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있었다면 저런 공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세계적 인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구성원이 어려움을 느꼈다는 건 아이러니 합니다. 어쩌면 우리사회의 문화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핀란드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의 20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행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 작곡가는 핀란드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지휘자가 많이 배출됐고, 작곡가, 연주자 모두 인구에 비해 많이 나왔다는 이유였는데요. 더 숨은 뜻은 이랬습니다. “나라에서 음악가들을 철저하게 지원해줍니다. 자기 나라에서 이런 사람이 배출됐다는 걸 국민 한 명 한 명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너무 부럽습니다.”

진 작곡가는 클래식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2004)와 아놀드 쇤베르크상(2005),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2010) 등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저명한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그를 “보석상자”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그만큼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을까요?

마지막까지 진 작곡가는 서울시향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12년 동안 그의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고 했습니다. “한국 출신 음악가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에 한국이 국제음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12년 내가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가 상임작곡가라는 이유 만으로도 서울시향이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독일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결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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