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공동정범’ 연출한 김일란ㆍ이혁상 감독

용산참사 생존자들의 고통과 갈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을 연출한 김일란(왼쪽)ㆍ이혁상 감독은 “영화는 관객을 만나는 순간 완성된다”며 “이 영화가 용산참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염은 순식간에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25시간 만이었다. 무리한 진압작전을 지시한 경찰 책임자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철거민들은 ‘공동정범’(둘 이상이 공동으로 저지른 범죄 또는 범인. 각자가 전체에 형사책임을 진다)이 돼 4~5년간 감옥에 갇혔다.

그날 망루에 올랐던 이충연(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연대 농성에 참여한 김창수(성남 단대동 철거민), 김주환(서울 신계동 철거민), 천주석(상도4동 철거민), 지석준(순화동 철거민)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자책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원망은 서로를 향했다. 용산참사에서 타 지역 연대 농성자들이 지워졌다고, 당신보다 내가 당한 피해가 더 크다고, 한풀이할 시간에 진상규명 투쟁을 하라고, 그렇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진실은 아직 망루 안에 봉인돼 있고, 화염은 남은 자들의 삶까지도 집어삼켰다.

2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공동정범’은 철거민 5인의 현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고발한다. 경찰 채증 영상과 재판 증언으로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해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7만3,000여 관객을 동원한 ‘두 개의 문’(2012) 후속편이다. 이 영화에서 연출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호흡을 맞춘 김일란ㆍ이혁상 감독이 ‘공동정범’을 공동 연출했다. ‘공동정범’은 두 감독이 속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아홉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용산참사 9주기를 사흘 앞둔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영화관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남았지만 철거민들의 삶은 여전히 망루 안에 갇혀 있다. 시네마달 제공

-9년간 용산을 기록했고 영화 2편을 완성했다.

김일란(김)=“2010년 1월 9일, 참사 1년 만에 철거민 희생자들 장례를 치렀다. 정확히 355일 만이었다. 그날 누군가 얘기했다. 남일당 자리에 건물 올라갈 때까지 촬영해 보라고. 당시엔 농담처럼 흘렸는데 어느새 9년이 흘렀다.”

이혁상(이)=“그날 이충연씨를 처음 만났다. 충연씨는 망루투쟁 생존자인 동시에 현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유족이다. 아버지 장례 치르러 형 집행 정지로 잠시 나온 그를 인터뷰했다. 뭐라도 찍어 두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용산참사에 주목한 이유는.

이=“망루 안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죽거나 감옥에 갔다.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정보의 제한도 있었다. 그래서 ‘두 개의 문’을 경찰 자료로 경찰 시선에서 재구성하게 된 거다.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찾으려면, 철거민의 시선에서 참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둘을 합치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2013년 1월 철거민들이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했다. 그런데 촬영을 거듭하면서 오히려 철거민들 사이 갈등이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집안싸움인데, 이 또한 국가폭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철거민들의 기억보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진상규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동정범’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김=“철거민들의 원망이 왜 서로를 향하게 됐을까? 갈등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이후였다. 국가는 철거민 모두에게 경찰 사망과 부상에 법적 책임을 물었지만, 철거민 사망에 대해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공동정범이란 개념을 통해 당시 검찰 기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다소 어려운 법률 용어인데.

김=“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공동정범으로 기소되면서 대중에게 이 용어가 알려졌다. 덕분에 영화 안에서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덜어졌다(웃음).”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은 부상자, 사망자, 범죄자가 됐다. 시네마달 제공

-주인공들에겐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고통일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김=“주제가 바뀌고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 영화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들의 고통을 드러내는 게 갈등 해결과 진상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승낙해줬다. ‘두 개의 문’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 현장 활동가들의 믿음도 도움이 됐다.”

이=“철거민들이 얘기할 곳이 없는데 우리가 들어주는 역할을 한 거다. 또 그렇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메신저 역할도 하게 됐다. 막혀 있던 대화 창구가 열렸고, 철거민들도 조금씩 변했다. 이 영화는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감정의 충돌, 인간관계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순결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타파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김=“철거민들이 장례를 미루면서까지 진상규명을 요구했을 때 일부에서 ‘시체팔이’라고 매도했다. 이런 혐오 표현의 이면에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잘못 전달될까 두려워하는 우리가 있다. 피해자는 숭고해야 한다는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야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거라 생각했다.”

용산 참사 9주기를 하루 앞둔 19일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개인사무실 앞에서 용산참사 생존자들이 이 전 대통령에게 영화 ‘공동정범’ 초대장을 전달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극영화를 보는 듯한 감흥도 느꼈다.

이=“감성의 손길이 닿아야 영화가 다루는 사회적 주제가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두 개의 문’이 그 지점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아쉬움도 있어서 ‘공동정범’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이 영화로 용산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경찰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용산참사를 우선 조사 대상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는데, 재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 시민의 관심이 가장 큰 힘이다. 그 힘을 모으는 데 이 영화가 기여했으면 한다.”

이=“철거민 가족들이 아버지ㆍ남편을 이해하는 데 작은 계기가 된다면 더 좋겠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공동정범’은 2016년 9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첫 상영됐다. 당시 영화의 엔딩은 절망 어린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직후 국정농단사태가 터지고 광장에 촛불이 밝혀졌다. 김일란(왼쪽)ㆍ이혁상 감독은 “촛불을 만나면서 영화가 다소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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