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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못난 짓이 역사에 기록된 까닭

입력
2018.01.22 14:3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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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못났다고 할 때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행위나 양상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 참 못났다고 여기게 되는 걸까. 역사를 보면 ‘못난 짓’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적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춘추좌전’은 유가 경전의 하나로 공자가 활약했던 춘추시대 역사를 다룬 책이다. 여기에는 ‘못난 짓의 파노라마’를 스펙터클하게 구성하고도 남을 정도로, 못난 짓을 벌인 이들의 군상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못난 짓을 벌인 주인공은 군주급인 제후부터 고위 관리나 장수 등이었다. 못난 짓이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문제가 되는 것은 치자(治者), 요새로 치자면 ‘사회적 강자’가 그것을 저질렀을 때라는 통찰이 스며들어 있는 대목이다.

당시 위(衛)나라에 장공이란 제후가 있었다. 함량이 많이 부족한 군주였던지라 결국 정변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사세가 급박해지자 그는 궁궐 담을 넘어 도망가다가 그만 넓적다리가 부러졌다. 그럼에도 용케 기(己) 씨라는 이의 집에 숨어들게 됐다. 그런데 기 씨는 장공을 보자마자 칼을 빼 들고 죽이려 했다. 화들짝 논란 장공은 귀한 벽옥을 보여주며 자기를 살려주면 그걸 주겠다고 약조했다. 순간 기 씨가 대꾸했다. “너를 죽인다고 하여 벽옥이 어디 딴 데로 달아나겠느냐?” 그러곤 장공을 죽이고 벽옥도 취했다.

재물에 눈이 멀어 군주조차 서슴없이 시해하는 기 씨를 비난하고자 기록한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의 일이었다. 장공이 하루는 성루에 올라갔다가 머리카락이 유난히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다. 그는 지체 없이 수하를 시켜 머리카락을 베어오게 한 후 그것으로 가발을 만들어 자기 애첩에게 하사했다. 그때 머리카락을 베였던 여인이 바로 기 씨의 아내였다. 기 씨는 난데없이 머리카락을 잃어 민머리가 된 아내의 복수를 수행한 셈이었다.

물론 기 씨의 행동은 과했다. 다만 이를 두고 ‘몰 개념’이라고 할 수는 있을망정 ‘못난 짓’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싶다. 더구나 기 씨는 자기 의도와 무관하게 벌어진 상황에서 자기 힘만으로 아내의 원한을 갚았지만, 장공의 못난 짓은 군주라는 권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못남이었다는 점에서 기 씨의 몰 개념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춘추좌전’의 저자가 평민,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인 기 씨의 몰 개념보다는 사회적 강자인 장공의 못난 짓을 더 크게 부각한 까닭이다.

한마디로 장공은 못난 짓으로 행세했던 셈이다. 당연히 이는 그가 군주라는 힘을 지녔기에 가능했다. 못난 짓은 결과도 못나기 마련이지만, 그 힘 덕분에 그는 못난 짓을 했음에도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가 못난 짓을 거듭 자행하고 있다는 자각은커녕 그걸 오히려 잘난 짓으로 맹신케 된다는 점이다.

역시 ‘춘추좌전’에 나오는 일화다. 기원전 563년에 있었던 일로, 노 나라가 핍양이라는 성을 공격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핍양성 사람들은 성벽 위에서 긴 천을 늘어뜨렸다. 노나라 병사더러 성벽을 넘어와 얼른 핍양성을 함락하라는 뜻이 아니라, 용기 있으면 어디 한번 올라와 보라는 도발이었다. 이를 붙잡고 웬만한 높이에 올랐을 때 천을 끊어버리면 결국 굴러 떨어져 죽기에 사실 이는 너무나도 뻔한 함정이었다. 정상이라면 그런 함정에 스스로 빠질 이는 없을 터였다. 더구나 전쟁은 승리하기 위해서 엄청난 인명과 물자를 희생시켜 가며 수행하는 것이지, 어느 한 개인의 무용을 자랑하기 위해서 치르는 것이 아니다. 무모하게 천을 부여잡고 성벽에 오를 이유가 전혀 없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노 나라 측의 한 장수가 그 천을 잡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끝에 다다랐을 무렵 예상대로 핍양성 사람들은 천을 끊어버렸고 그는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죽음은 면했다. 그러나 기운을 차린 그는 다시 천을 붙잡고 올라갔고 또 떨어졌다. 그렇게 하기를 세 차례, 핍양성 사람들은 그만하자며 천을 걷어 올렸고 노나라 측도 군대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그 장수는 천을 몸에 감고 사흘간이나 군중을 돌아다니며 무용을 자랑했다. 장수로서 공적 이로움의 실현을 앞세웠어야 할 자리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투신한 셈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못난 짓을 한 줄도 모르고 오히려 이를 사흘 동안이나 떠벌리고 다녔으니 그 못남은 가히 역사에 기록되어 길이 전해질 만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못난 짓의 결과가 당사자에게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못난 짓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강자는, 역사가 밝히 말해주듯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권력을 자기 이익 실현을 위한 이권으로 악용한다. 못난 짓은 애초부터 그걸 정당화해줄 내적 근거가 없기에, 그들은 남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원천으로, 남의 행복은 자기 불행의 원인으로 간주한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 행복은 나눌 줄 모르지만 불행은 늘 남들과 나누려 애쓴다. 그들이 저지른 못난 짓으로 인한 악영향이 그들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이유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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